노무현 정권이 내건 기치는 ‘참여정부’다. ‘참여’란 더불어 가자는 뜻이다. 전라도 경상도 가르지 말고 나이 셈하지 말고 학력 따지지 말고 함께 일하자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슬로건인가. 노 정권의 이 구호 속엔 과거 정권들에 대한 비판도 깃들어 있다.
‘문민정부’를 내 건 YS정권은 ‘문민 독재’라는 비판을 받았고, ‘국민의 정부’를 제창한 DJ 정권은 ‘남남(南南) 갈등’을 야기해 국론을 반토막냈다. 앞선 두 정권에 대한 비판이 5년 집권을 총평한 결과임을 전제할 때, 이제 출범한지 두 달밖에 안된 노정권을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다. 한데 전임 정권 모두 집권 초반부터 이미 비슷한 비판을 듣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노정권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북 인권엔 ‘불참, 3자 회담선 소외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노정권은 “시작이 반”이라느니, “떡잎부터 알조”라느니 하는 말들을 듣고 있다. 정권이 내건 ‘참여’는 자기편만의 참여라는 혹평도 나온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쳤지만 노 대통령 출신지역(부산 경남)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발탁되고 반대로 호남은 푸대접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라도에선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이 따지지 말자 해놓고 사회 지도층은 40대로 물갈이하는 세대혁명이 한창이다. 북한과 미국(미군) 문제를 둘러 싼 이념대립이 심각한 수위에 이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는 많은 국가정책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해 있다.
지난 선거 때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세력들은 노정권의 ‘참여’를 시니컬한(냉소적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참여를 부르짖은 정권이 언론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고 노-사 정책에서 공정한 조정자 입장에 서야 할 대통령이 노조편에 섬으로써 ‘네 편’을 배제시켜 ‘따돌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한다. 여기서 ‘따돌린다’는 뜻은 요즘 한국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왕따’라는 뜻이다.(사실 나는 ‘왕따’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0대들이 ‘크게(왕) 따돌린다’는 말을 ‘왕따’로 줄여 쓰면서 유행이 된 말이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오염시킨 저속한 은어의 한 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참여’를 제창한 노정권이 중요한 외교정책에서 ‘참여’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한 케이스는 ‘참여’의 반대쪽인 ‘불참’을 스스로 택한 경우고, 다른 한 건은 타인에 의해 ‘따돌림’당한 경우다. 지난주 유엔 안보이사회는 북한 인권정책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심의하고 다수 회원국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한데 이 문제와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한국 정부는 ‘불참’을 선언하고 회의장에 나가지 않았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노 정권의 설명이다. 빙토의 북한 인민이 기아와 속박에 시달리고 거주 표현의 자유가 없는 ‘이 지구상 최악의 인권 탄압국가’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유엔이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국제사회가 보다 관심을 갖고 김정일 독재정권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권이나마 개선해 보자는 취지인 것이다. 이는 사실 우리가 오히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문제다. ‘같은 동족’ 운운하면서 그들의 비참한 생활에 눈을 감겠다는 것은 무슨 말로도 용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인권결의안 표결에 아예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래 가지고야 다른 유엔 회원국을 무슨 낯으로 대한단 말인가.
둘째 사안은 요즘 초미의 관심사가 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에서 한국이 빠진 것을 말한다. 머지 않아 베이징에서 열릴 ‘북핵 회담‘에는 미국 북한 중국 등 3개국만 ‘참여’하기로 결정이 났다.
이번 경우는 우리 정부가 자의적으로 ‘불참’한 게 아니다. 북한이 ‘남한 정부 대표와는 한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왕따’를 당한 꼴이다. 가제는 게편이라고 이 문제를 거중 조정한 중국으로부터 북한의 한국 배제 요구를 전달받은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왔지만 한국의 외교부장관은 “회담 성사가 급하니 도리 없다”고 동의했다는 것이다.
‘참여’ 살리는 올바른 정책을
이상의 두 사건을 통해 우리는 노정권의 대북 외교정책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자신이 집권하면 “원칙과 정도”에 입각한 자존적 외교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공약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에 대해서나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겠다”고 장담했다. 또 집권 후엔 북핵 문제가 터지자 미국에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면서 “우리가 주도적 위치에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실제는 딴 판이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선 ‘할 말’을 하지 않고, ‘주도적 역할‘은 ‘왕따’로 결론 났다.
지금 개원 중인 국회에서 이 두 문제를 놓고 야당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대해 국민 여론이 ‘옳소‘하고 손을 들어주고 있음은 노정권이 뭔가 잘못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국회의 관련 상임위원회는 연일 이 문제를 놓고 학자 출신 외교부장관을 출석시켜 따지고 있다. ‘주도적 역할은 종속적 왕따로 전락했다’ ‘노정권도 DJ정권처럼 북한 비위 맞추기와 퍼주기로 나가려는 게 아니냐’는 노성이 터져 나왔다. 집권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도 톤만 줄였을 뿐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음도 이번 일이 예사롭지 않음을 반증한다.
이제 앞으로 ‘참여정부’가 이런 비판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되지만 비판론에 대해 “일일이 구차하게 해명하지 말라”는 노 대통령의 ‘엄명’으로 미루어보건대 참여와는 동떨어진 ‘마이 웨이’로 달려갈 공산이 크다. 그런 식이라면 ‘참여정부’ 기치가 혹여 빛을 발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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