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자기 의견이나 행동은 합리적이고 자신과 다른 것들은 상식에서 벗어났거나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들도 이런 성향을 보인다. 한마디로 자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나 생각을 당연히 옳은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잘못된 컨센서스 효과’라고 부른다.
이라크전이 2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전투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희생자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라크전을 지켜보면서 미국이 지금 ‘잘못된 컨센서스 효과’에 지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떨칠수 없다. 전쟁이 시작된 다음날 백악관 기자실에 나온 아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전쟁은 세계의 지지를 얻고 있다. 30개국 이상이 지지를 표명했다. 지지를 나타낸 국가의 인구를 합치면 11억5,000만명에 달하고 국민총생산은 22조달러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플라이셔 대변인이 언급한 국가의 국민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분명 아닐터이다. 그 가운데는 한국민들도 물론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전쟁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계산기 두들겨 가며 이런 수치까지 내놓은데서 역설적으로 명분을 둘러싸고 미국이 빠져있는 궁색한 처지가 드러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애써 컨센서스에 대한 자기확신을 만들어 가려는 고민이 읽혀진다.
‘잘못된 컨센서스 효과’는 당연히 일방주의를 낳는다. 힘이 뒷받침되면 그런 태도는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이라크전은 시작전부터 국제사회, 특히 유럽국가들의 반대와 반발에 부딪혔다. 미국과 유럽간의 해묵은 경쟁의식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태도가 프랑스와 독일등의 반발을 초래한 측면이 더 강하다. 결국 국제기구를 통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가운데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쟁은 언젠가 종결되겠지만 미국의 조급함과 밀어부치기식 개전으로 생긴 국제사회의 갈등과 균열은 상당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뿐 아니다. 미국 언론들의 전쟁보도에서도 일방주의 경향이 확연하다. 퇴역군인들을 해설자로 내세운 전황 보도와 해설은 마치 풋볼중계를 보는 듯 하다. 팍스 TV같은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는 애국주의적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우리 군대는’ 같은 주어들이 난무한다. “바그다드에 입성하더라도 이라크가 민간인들을 방패로 세우면 작전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앵커의 질문에 퇴역장성 출신의 해설자는 “사담의 극악함은 그 끝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바그다드 전투에서 발생하는 모든 결과는 사담 한사람의 책임이라는 식의 일방적인 발언이다. 물론 이들도 기자와 해설자이기에 앞서 미국인인만큼 100% 가치중립적인 보도를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균형감각이 아쉽다.
일방적인 시각은 뉴스 소비자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이라크 국경을 넘어선 미군이 시속 몇십마일의 속도로 북진하자 며칠안에 전쟁이 끝날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전쟁 양상이 바뀌면서 장기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이번 전쟁이 쉽게 끝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측에서는 여우사냥에 나선것인지 몰라도 이라크 측에서는 집안에 호랑이가 들어 온 격이니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년전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가인 찰머스 잔슨은 “미국의 제국적 과잉 팽창 정책이 전쟁의 악순환과 역풍(blowback)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바 있다(그의 책은 최근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그의 우려는 얼마후 9.11테러로 현실화 됐다. 벌써부터 아랍권에서는 후세인을 영웅시 하는 분위기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 되면 이런 분위기가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장기화는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게 되고 피해가 커지면 그만큼 증오의 농도는 짙어지게 돼 있다. 그 증오는 사막의 매서운 모래바람 같은 역풍이 돼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부시대통령은 “이번 전쟁이 끝나면 세계는 더욱 안전해 지고 평화로워 질 것”이라고 수도 없이 장담해 왔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더 안전해진 세상에서 살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난망해 지는 것 같다.
조윤성
<부국장겸 특집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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