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반전에, 반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시아도 결코 그 유행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 청년이 미국의 폭탄을 몸으로 저지하는 인간방패가 되고자 바그다드로 달려가고 있는 판이니까.
눈을 미국 안으로 돌리면 상황은 많이 다르다. 미국민의 절대 다수가 이라크 침공을 찬성하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미 언론이 징고이즘을 고취한 결과다. 호전적 대통령에, 호전적 국민이 미국이다. 한마디로 제국주의 미국의 본색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미국 밖의 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도 1990년대에 살고 있다. 미국 사회의 정서는 다르다." 한 논객의 지적이다. 어느 청명한 아침 엄청난 충격파가 전 미국을 덮쳤다, 세계무역센터가 날라갔다. 이후 미국은 달라졌다. 미국민은 ‘90년대 행복도취증세’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생화학 테러, 핵테러를 불사하는 적들이 공격을 가한 후 자위에 나선다. 이건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선제공격만이 살 길이다." W 부시의 주장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들리던 말이다. 미국민에게 이제는 현실로 들리게 된 것이다.
토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과 전 세계 평화에 위협적 존재다. 맞다. 핵을 손대고 자국민에게도 생화학무기를 사용한 전과가 있으니까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담이 통치하는 이라크는 따라서 무장해제 되어야 한다. 그것도 맞다.
평화적인 무장해제는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본다. 유엔 사찰단에 맡기면 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유엔 결의를 번번이 무시해온 지난 십수년간 행태로 볼 때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 방법은 그러면 무엇인가. 체제변화다.
토론은 여기서 종결됐다. 최후통첩과 함께 미국은 군사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체제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시대의 중차대한 전환점에 서게 됐다.
부시의 정치적 운명이 걸려서가 아니다. 이라크 국민의 운명이 걸렸고, 미국의 운명이 걸렸다. 또 냉전시대 이후 세계의 진로가 제2의 이라크 전쟁의 결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도 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다.
"이라크에 ‘스마트 밤’이 떨어지는 순간 세상은 달라진다. 이라크전은 오랜 냉전체제의 잔재를 말끔히 없애는 계기가 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시대에 지속되어 온 동맹관계가 이미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는 데에서 나온 전망이다.
유엔과 나토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국제기구다. 이 기구들이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그리고 이에 대응한 선제공격론 대두에 따라 그 존재 이유를 상실케 돼 하는 이야기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철회하고 미국이 사실상 단독으로 이라크 공격을 감행키로 결정한 게 그 결정적 증거다. 이는 과거의 동맹관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동맹 라인-업이 이미 형성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온 세상이 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전쟁 추이에 따라 상황은 급변할 수도 있다. 전쟁이 가져오는 변화의 물줄기가 급류가 되어 몰아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한반도다.
’토론은 종결됐다. 체제변화를 미국은 선택했다’-. 전쟁, 다시 말해 대량살상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을 ‘선제공격’으로 분쇄하는 전쟁은 이라크 전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거기에는 전제가 따른다. 미국이 이라크전을 조기에 성공적으로 매듭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 될 때 미국은 지난 70년대처럼 ‘자기불신’의 시대를 맞을지도 모른다. 부시의 정치 운명은 이 경우 보나마나다.
부시 행정부 의도대로 전쟁이 끝날 때 그림은 달라진다. 전선은 확대된다. 그 연장에서 한·미관계, 북핵문제, 미국과 북한, 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관계에 ‘대지진’에 버금가는 변화가 올 수도 있다.
그 변화의 한 가능성을 한 매파 논객은 이런 식으로 묘사했다. "이라크전을 끝낸 후 미국이 총력을 집결해 대처해야 할 문제는 북한 핵위기다. …북한은 사실에 있어 ‘종이 호랑이’일 수도 있다. 미국이 이라크전 승리의 여파를 타고 북한을 정면에서 강하게 압박할 때 김정일 체제는 초기에 쉽사리 무너질 수도 있다."
전쟁은 대변화를 동반한다. 반 세기전 대전쟁은 세계의 정치 지도를 바꾸었다. 한반도 분단은 그 세계적 변화의 끝자락이었다. 2003년. 어쩌면 21세기 세계 전쟁의 원년이 될지도 모를 해에 벌어진 이라크전은 그러면 한반도에 어떤 변화를 몰아올까. 이라크 전쟁의 추이를 지켜보아야겠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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