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맛 안에는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손맛이 가미된다. 같은 재료와 양념을 사용해도 그 맛이 각기 다른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한 친구는 결혼해서 시어머니께 파 써는 방법부터 배웠단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 그 모양과 크기가 달라 이런 자잘한 것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싶어 당황했었다고 한다. 음식의 간과 조리하는 방법이 친정과는 달라 은근한 시집살이를 한 다른 친구는, 김을 못 잰다는 이유로 골이 깊어지더니 결국 이혼을 했다. 과장된 이야기라고 일축해 버리기에는, 그것은 핑계며 말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기에는, 식생활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딸 부잣집 막내로 자라나 부엌에 들어갈 일이 별로 없어 결혼할 때만 해도 제대로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다. 신혼시절 어깨너머로 시어머님께 하나씩 배웠더니 결혼 생활의 경력과 더불어 실력이 향상되어 이제는 어엿한 주부로, 솥뚜껑 운전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이력이 붙었다.
분가해 사는 요즘, 몸이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면 어머님이 끓여 주시던 잡탕찌개가 먹고 싶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은 한데 모아 만드셔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혼자 해보니 그 깊은 맛이 우러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그분만이 갖고 계신 노하우가 있나보다. 특히 한국음식은 정확한 수치로 양을 조절해 넣기보다는 ‘감’으로, ‘눈대중’으로 대강 양념을 하기에 똑같은 맛을 낸다는 것이 힘들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는 답하기 애매모호한 질문이 있듯이 단지 배를 채운다는 일차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그 세대의 의식과 생활방식도 담겨진다. 자급자족에 의지하던 조상 때에는 제철에 나는 것이 주재료라 계절의 맛과 멋을 내는 뚜렷한 음식 류가 존재했었다. 이젠 세상이 변해 냉장, 냉동 등 저장시설이 발달되고, 온실 재배 등으로 계절을 특별히 가리지 않아도 웬만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특이한 맛을 내는 화학 조미료도 개발되고, 세계각국의 음식도 맛 볼 수가 있다.
또한 무엇이 즉석 식품들이 붐을 이룬다. 세대를 초월한 간식인 라면만 해도 중간의 여러 과정을 단축시켜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컵 라면으로 변신을 했다. 밥도 마이크로 오븐에 살짝 데우기만 하면 되고, 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듯 패스트푸드의 대량 생산과 속도 제일 주의에 밀려 신선하고 제대로 된 조리법과 맛이 갈수록 잊혀져가고 있다. 획일화된 입맛과 간으로 우리네 사고 방식과 의식구조 또한 유행의 흐름에 따르는 풍조를 만든 것 같다. 번거롭고 복잡한 것을 회피하고, 힘 안들이면서 간단한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중시하게 만들어 간다. 즉석에서 먹고 버리는 일회용에 물들어, 사람과의 만남도 가볍게 여기고, 물건의 소중함을 모르는 젊은 층이 많아짐도 바로 이런 영향이라 생각한다.
요즘 ‘이질적인 장르의 결합 내지는 융화’를 뜻하는 ‘퓨전’이라는 새로운 음식 문화가 생겼다.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양념의 기본이 되고, 어느 장르에도 뿌리를 두지 못한 채 재료만 뒤섞인 음식, 알록달록 접시에 그림을 그리듯 장식된 음식은 집어먹기가 민망하기도 하다. 세계화를 부르짖는 세대이라 융화되고 섞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국적 불명인 음식이 낯설다.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는데 서로 잘 어우러지는 것들이 모여야 영양가도 보안되며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을까.
나는 음식을 만들 때 조금은 유난을 떤다. 김치를 담그면서 아이들을 불러내 같이 간도보고, 당근이나 양파의 껍질을 벗겨 달라고도 해 본다. 며칠 전에는 큰아들이 엄마가 해준 만두가 최고라는 칭찬에 마음이 우쭐해져서 장을 보아 만두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양념을 넣어주어 만두소를 준비하고,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다. 남자아이들이라 장난치듯, 서로의 것을 보고 놀리며, 네 명이 머리를 맞대고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의 시간들이 소중하고 즐겁다. 내 혀끝에 친정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잡채나, 보쌈김치가, 시어머님의 게장과 약밥이 그 어느 누구의 솜씨보다 일미로 새겨졌듯이 아들들도 만두 하면 ‘엄마 표 만두’를 떠올릴 것이다.
힘들고 귀찮기도 하지만 어쩌랴. 가족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을 때 엄마는, 주부는 행복하다. 만드는 동안의 정성과 간이 배이고, 뜸 들이는 시간적 여유가 바삐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서는 꼭 필요한 휴식의 의미를 부여해도 될 것 같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옛말을 되새겨 본다.
가족이라는 큰 밥솥 안에는 항상 정이 뜸 들고, 사랑의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오르기, 때문이리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