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장구 소리만 들어도 춤을 춘다고 했던가. 연극 하자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버리지 못하는 나의 습성! 그래서 지난 해 10월, 내 고향 통영에서의 나의 아동극 축제에 갔다 온 지 석 달도 채 안되어 다시 한 마리 욕망의 새가 되어 하와이로 날라간다. 8월에 있을 이민 100주년 기념 아동극단 ‘민들레’ 하와이 공연의 사전답사 때문이다.
하와이 공연! 이는 나의 남국을 향한 파초의 염원인 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닷가로 떠돌아 살아왔던 나의 동심이 하와이 같은 짙푸른 원시의 바다로 내 가슴을 열어 보고픈 심정에서 랄까. 그러나 나의 건강이 나의 소망을 따라 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남국의 섬이 나에게 손짓한다고 해도 그저 그 곳을 바라볼 뿐이겠지만,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그것을 배달하는 사람 쪽이 더 건강하다고 했듯이, 어린이들에게 추억을 배달해 주는 나이기에 나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자기 일에 몰두하여 즐기고 있을 때 만큼 행복할 때가 없다는 그 말이 나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일까?
언제나처럼 알로하(Aloha)란 반가운 마중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 ‘푸루메리아’ 꽃 향기와 레이(Lei) 목걸이가 이국의 방문객인 나를 맞아준다.
우리 민들레 공연을 주최할 한국일보 하와이지사의 이영호 사장의 차에 실려 호놀루루 도심의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 나는 파고다(pagoda)라는 제법 고급스러운 호텔에 여장을 푼다. 이 호텔은 우리가 공연 와서 묵을 곳이라고 한다.
포근한 꿈에 쌓여 잠든 상하(常夏)의 하룻밤은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는다. 나를 데리러 온 이 사장과 호텔 맞은 편에 위치한 ‘서라벌’이란 한식집에서 아침을 끝낸 나는 우리가 공연할 메켄리 고등학교 극장의 답사를 마치고, 한국일보와 라디오 서울로 실려가 나의 하와이 방문 목적에 대한 인터뷰와 대담 프로에 출연하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산호세와는 불과 2시간의 시차인데도, 포근한 날씨 탓일까 아니면 매일 웅크리고 앉아 원고지를 메우던 작업에서 한때나마 풀려난 해방감에서 일까, 자꾸만 눈이 감긴다. 그래서 나는 이내 오수(낮잠)에 빠지고 만다.
얼마를 잤을까? 눈을 뜨고 보니 오후 3시가 가깝다. 스위치를 켠 채 자버린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우카래래’ 악기 선율에 맞춰 훌라후프 춤을 추고 있는 폴리네시안 무희(舞姬)들의 엉덩이 춤이 흐르고 있다. 12층 내 방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니, 내가 잠들기 전에는 맑게 개어있던 날씨였는데 잠든 사이 소낙비가 쏟아진 듯 저 아래 아스팔트 보도가 촉촉하게 젖어있다. 그리고 와이키키 수평선에는 영롱한 7색 쌍무지개가 걸려있다. 오하우 섬 마노아(Manoa) 골짜기에는 비가 오는데 와이키키 해변에는 쨍쨍한 햇빛이 내리 쪼인다는 하와이의 날씨!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소나기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볼 수 있다는 쌍무지개! 그래서 하와이를 무지개의 섬. 꽃의 섬이라고 부른다나.
나는 호텔 방을 빠져 나와 호텔 뒤쪽의 산책 길을 걸어본다. 길 옆 파초의 커다란 잎사귀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하와이의 비는 산성(酸性)비가 아닌 순도 100%의 순수한 비라나. 나는 어린 시절 학교 길에서 느티나무 밑에서 소낙비를 피해 섰던 그 순수한 비와 비 개인 뒤에 실눈을 뜨고 바라보던 그 아름답던 무지개를 다시 생각해본다.
망망대해 태평양바다 바람에 그리고 순수한 비에 씻길 대로 씻긴 나무 가지에 핀 갖가지 꽃의 향내가 이 이국의 촌로(村老)의 몸에다 꽃 향기를 뿌려준다. 그래서 나는 행복에 젖어본다 이런 행복감 때문에 ‘고호’가 ‘고갱’이 ‘타이티’와 ‘사모아’ 섬 그리고 이 하와이 섬 언저리에서 떠나지 못 했는지 모른다.
’다이아몬드 헤드’ ‘폴리네시안 컬츄어 센터’ ‘델몬트 농장’ 그리고 ‘진주만’은 오는 8월에 우리 귀염둥이 어린이들과 함께 가보기로 하고,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와이키키 해변으로 달려갔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행렬이 지나간 거리라고 한인 택시기사가 귀띔해준다.
와이키키 해변에 내려진 나는 야자수 그늘에 앉아 홀랑 벗고 자연으로 돌아간 열대어(熱帶魚)같은 수영 객을 바라보면서 11년 전 이곳을 찾아 왔을 때 피아노 건반같이 앙상한 내 갈비뼈 때문에 빌렸던 수영복을 입지도 못하고 되돌려 주었던 그 때를 생각하며 쓴 웃음 짓고 있을 때, 나는 처녀라는 표시로 오른쪽 머리에 폴루메리아 꽃을 꽂은 까무잡잡한 피부 색깔이지만 예쁘게 생긴 폴리네시안 아가씨가 다섯 손가락을 꼬무락거리며 나에게 손짓한다. 나는 자기에게 가까이 오라는 줄 알고 엉거주춤 일어 섰다가, 그 손짓이 안녕이란 미국식 손짓임을 깜빡 잊었던 나의 착각을 깨닫고 다시 주저 않는다.
하와이의 또 하루가 지나고 나는 남국의 여정(旅程)을 가슴에 담고 산호세로 돌아가기 위해 밤 12시, American Air Line에 오른다.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라 올라 갔을 때 창쪽 좌석에서 내려다 보이는 진주만의 불빛이, 1941년 12월 7일,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그 때를 되살리게 한다.
우리가 8월에 공연할 ‘콩쥐팥쥐’ 공연이 하와이의 쌍무지개처럼 영롱하게 펼쳐지기를 빌고 있을 때, 비행기는 조물주가 만든 걸작의 섬, 하와이에서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동극작가 주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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