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엽, 영국의 산업혁명이 기계의 혁신을 통해 인간의 삶의 양식과 사회, 경제구조상의 획기적 변혁을 가져왔다면, 20세기초 테일러 (F.W Taylor)의 과학적 관리론은 기계로부터의 혁신을 사람으로 확장시킨, 즉 인간의 일과 노동에 대한 기계효율적 사고라 할 수 있다. 기계에서 사람으로, 다시 사람에서 제도로 능률과 효율의 신화는 근 한 세기를 광풍처럼 지배해 왔으며, 지금도 때론 신자유주의라는 모습으로, 때론 맥도날드의 ‘친근한’ 황금아치를 통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권력의 경우도 있어서도 능률성 신화의 중독에 있어서는 그 예외는 아니다. 며칠 전 노무현 신정부가 공식 출범함으로써, 이젠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 조차 신 정부의 변화와 개혁이 성공적으로 착근되길 모두 바라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실패는 종종 외부로부터 오는 경우 보다 권력자 자신 또는 권력내부에 존재하는 ‘능률의 신화’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종종 기인하곤 한다. 그럼 그와 같은 유혹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혁정권을 중독시키는가.
첫째, 개혁은 종종 혁명의 심리에 중독된다. 혁명은 배제적이고 독선적이나, 빠르고 능률적이다. 이와 달리 개혁은 개혁의 대상과 타협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으며, 개혁 정책의 과정과 수단에 대한 설득과 타협을 요구하기에 국민통합의 지혜가 성공의 요체이다. 신정부와 마찬가지로 개혁은 지난 양 김 정권들 또한 끊임없이 주창해온 것들이다. 비록 Y.S의 하나회 숙정에서 보듯 혁명적인 개혁의 성공도 있어 왔지만, YS의 깜짝쑈에 가까운 세계화정책들과 외환위기, 그리고 DJ의 남북정상회담과 대북송금수사라는 암울한 고리들은 무얼 말하는가.
5.16 "혁명"으로 스스로 이름 붙인 근대화 세력들과 끊임없이 싸워온 그들조차 권위주의의 "능률성"이 주는 유혹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 시대의 개혁은 통합과 타협 그리고 설득과 존중의 가치가 갖는 느림(?)의 미학으로 이루어지지 결코 혁명의 심리에 중독된 개혁의 ‘칼’에 기반하지 않는다.
둘째, 개혁은 수단에 중독되어 도구-목적의 전도현상에 종종 빠진다. 행정과 관료제 개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편하고 능률적 수단들이 주는 매력에 종종 개혁의 목적과 추구하려는 진정한 가치가 매몰되는 위험이 있다. 이미 발표된 신정부 초대 장관들의 면면을 보면 가히 파격적이다. 아니 어찌 보면, 노무현 정부의 성격으로 볼 때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거니와 정권의 개혁철학이 인사를 통해 구현되는 것은 사실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기존인사관행과 서열에 고착된 관료제를 개혁하려는 것은 연공서열과 경직된 조직이 가져오는 관료사회의 능력저하가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사는 종종 인사 그 자체의 상징성이 주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YS, DJ 정부시절의 잦은 장관교체는 개혁의 상징성과 정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만큼 "능률적"인 통치수단 또한 드물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수단이 주는 상징성에 중독될 경우 인사가 갖는 목적과 추구하는 가치가 구현되는가를 살피는 데에 종종 무관심하고 결국 정책실패의 원인이 되어 정권의 부담으로 되돌아 오기도 한다. 파격적 인사일수록 개혁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는 사실과 개혁의 실적에 대한 평가가 더욱 가혹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개혁은 또한 능률지상의 신화가 주는 ‘양’(quantity)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양’의 개혁은 빠르고 가시적이며 높은 상징성을 갖기에 5년 임기를 가진 권력이 이로부터의 벗어나기 쉽지 않다. 과거 양 김 정권들의 개혁실패도 따지고 보면 ‘질’(quality)의 개혁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택 몇 백만호 건설이라는 양적인 치적의 홍보에 앞서 그것이 과연 서민들의 주거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켰는가에 정책평가의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삼풍과 성수대교 붕괴에 이은 각종 대규모 재난들과 난개발로 인한 자연파괴, 얼마 전 온 국민을 처연한 심정으로 몰아넣었던 대구지하철방화 참사도 따지고 보면 ‘능률"의 신화가 초래한 재앙이다. 이와 반대로 ‘질’(quality)의 개혁은 생명, 생태, 조화, 분배, 안전, 복지 그리고 느림의 미학이 주는 가치와 함께 한다. 신정부의 개혁의 성패여부도 바로 개혁의 조급함과 눈 앞의 성과에 대한 유혹에서 얼마만큼 벗어 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시절, 자신을 떠나 권력의 양지를 찾아 "능률적" 선택을 감행됐던 정치인들과 내키지 않았던 단일화의 파동 속에서, 노 대통령 자신은 하루하루를 일년을 보내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견뎌왔을 것이다. 그때의 인내와 견딤이 지금 개혁의 노정에 선 대통령에게 오히려 더욱 필요한 지도 모를 일이다.
장성희(하와이주립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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