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해방자’·‘선의의 독재자’ 양면성 지녀
링컨 모르고 올바른 미국 이해 불가능
노당선자 링컨 위대한 까닭 되새겨야
한 국민들은 박정희를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지만 미 국민들은 워싱턴과 링컨을 존경한다. 그 중에서도 링컨은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성인’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성스러움’에 가려진 링컨의 진면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링컨에 대한 환상을 깬 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로욜라 대학 교수 토마스 디로렌조가 쓴 ‘진짜 링컨’(The Real Lincoln)을 통해 링컨이란 인물의 의미를 반추해본다.
링컨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노 당선자의 링컨에 대한 존경은 립 서비스 차원이 아니다. 바쁜 정치인 생활을 하면서도 당선되기 1년 전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책까지 썼다. 링컨을 아는 것은 노 당선자의 생각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미주 한인들이 링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은 그를 모르고서는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링컨은 워싱턴을 제외하고는 미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의 재임 중 일어난 남북 전쟁 기간 동안 죽은 사람 수는 미 독립 전쟁에서 제1차 대전, 제2차 대전, 한국전, 월남전에서 죽은 모든 미군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초등학교 때 배운 남북전쟁의 역사적 의미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 등을 읽고 노예제의 참상에 분노한 북부인들의 대표 링컨이 악질 노예 소유주들을 무찌르고 노예를 해방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실상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 당시까지도 노예를 해방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일이 없다.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며 따라서 같이 살 수 없고 아프리카나 쿠바로 보내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게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그가 당선된 1860년 당시 노예제는 폐지돼야 하며 흑인과 백인은 평등하다고 생각한 미국인은 극소수였다. 링컨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더라면 대통령은커녕 주 의회 의원에 당선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북전쟁의 직접 도화선이 된 서부 주에 노예를 허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남부는 찬성, 북부는 반대했지만 북부가 반대한 이유는 흑인 노예가 예뻐서가 아니라 백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흑인들이 발붙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링컨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사람이 헨리 클레이라는 인물이다. 켄터키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시 민주당과 함께 주요 정당이던 위그당(Whig) 창립자인 그는 고율의 관세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철도 건설 중 대규모 사업에 적극적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팽창주의적 ‘미국식 체제’(American System) 신봉자였다. 그의 생각은 그를 사부로 모시던 링컨에 의해 계승돼 링컨의 정치 철학이 된다.
남북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노예제였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남북전쟁 이전까지 연방 정부 수입은 거의 전적으로 관세에 의지하고 있었다. 당시 선진국이었던 영국과의 경쟁에서 뒤지던 북부의 공장주들은 고율의 관세를 지지한 반면 농업 위주로 공산품을 대부분 수입해야 했던 남부 인들은 그 폐지를 원했다.
인구가 북부의 절반에 불과한 남부 인들이 총 관세의 85%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은 남부 인들에게는 ‘착취’로 비쳐졌다. 남북전쟁의 첫 포성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인근 연방 세관인 포트 섬터를 향해 울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부 인들이 원한 것은 북부와의 전쟁이 아니라 독립이었다. 당시 연방 정부는 주 정부들의 합의에 의해 세워진 것인 만큼 탈퇴도 주 정부의 자유라는 생각이 다수 의견이었다. 영국 정부의 과다한 관세에 반발해 독립을 선언한 ‘건국의 아버지들’이나 북부가 주도하는 연방 정부의 고율 관세를 거부하고 연방을 탈퇴하는 우리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 남부 지도자들의 생각이었다.
이에 반해 링컨 철학의 핵심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도 연방은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예를 해방시켜 연방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일부만 해방시키고 연방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도 할 것”이라는 링컨의 발언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립선언서’ 다음으로 중요한 선언서로 꼽히는 ‘노예 해방 선언서’도 진실로 노예를 해방하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전략적 편의를 위한 방편에 가까운 것이다. 노예를 실지로 해방할 수 있는 북부군 점령 지역에서는 효력이 없고 해방이 불가능한 남부군 점령지역에서만 효력이 발생하도록 돼 있다.
설사 링컨이 노예를 해방시키고 싶었더라도 당시 상황으로는 불가능했다. 노예제는 연방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폐지하자면 연방 상 하원 2/3와 전체 주 의회 3/4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 15개 주가 연방에 남아 있는 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어찌 됐건 링컨은 연방을 유지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비싼 대가를 치렀다. 당시 미국 인구가 3,000만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때 사망한 60만 명은 현재 인구 비율로는 500만 명에 달하는 숫자다. 이외에도 링컨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의회의 동의 없이 전쟁을 선포했으며 재원 마련을 위해 위헌적인 연방 소득세를 도입했다.
영장 없이 시민을 체포할 수 없다는 인신 보호법을 정지시키고 전쟁에 반대하는 신문을 폐간시켰으며 정적들을 재판 없이 교도소에 수감했다. 링컨을 칭송하는 사람들까지 그를 ‘선의의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전쟁 없이 노예를 해방시켰는데 이렇게까지 해가며 전쟁을 했어야만 했는가”고 반문하고 있다.
링컨을 찬양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이나 그가 정치의 달인이었으며 입지전적 인물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노예 해방과 연방 유지라는 업적이 과연 남북전쟁이라는 막대한 희생에 값하느냐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을 뿐이다.
1860년대의 미국과 2000년대의 한반도는 여러모로 사정이 다르지만 남북이 갈려 있고 한 쪽에서는 극소수의 특권층이 다수를 착취하며 인생을 즐기는 등 비슷한 점도 있다. 그러나 어떤 남부의 악질 농장주도 200만 흑인 노예를 굶겨 죽이고 20만 명을 강제 수용소 가둔 적은 없었다. 만약 링컨이 ‘인간 쓰레기’ 같은 남부의 노예들이 북쪽으로 넘어와 재정적 부담을 주는 것이 두려워 남부의 지도자들에게 뒷돈을 줘가며 굽신거렸다면 훗날의 평가는 달랐을 것이다.
링컨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은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입신 양명 해서가 아니라 250년 간 뿌리깊게 내려온 노예제를 철폐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과연 흑인 노예만도 못한 삶을 사는 북한 주민을 해방하는 한국의 링컨이 될지 히틀러에 놀아난 네빌 체임벌린이 될지 궁금하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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