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에이커 부지에 세계 각국 식물 3000여종 가꿔
CSUF 주차장 될 뻔, 명절 제외 연중 무료 입장
시멘트와 콩크리트 바닥에서 자동차들이 내는 소음과 배기 개스에 절어 쫓기듯 바삐 사는 도시인들에게 나무와 꽃이 자라고, 흙을 밟을 수 있는 공간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안도감을 준다. 자연을 정복한다고 날뛰면서도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예로부터 잘 발달된 도시들에는 반드시 멋진 공원, 녹지대가 함께 발달해왔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비견할만한 곳이 풀러튼에도 있다고 하면 물론 과장이지만, 칼 스테이트 풀러튼의 북동쪽 코너에 자리잡은 ‘풀러튼 수목원(Fullerton Arboretum)’은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휴식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서 흠이 없다. 26에이커의 대지 위에 캘리포니아의 자생 식물들은 물론 전 세계의 희귀식물들이 3000여종이나 모여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 자리잡은 연못들과 그 연못들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거기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이 이루는 정중동의 세계로부터 그윽한 평화가 흐르는 곳이다. 요바린다 블러버드와 어소이에이티드 로드 모퉁이, 인근에 프리웨이 입, 출구가 있어 더 복잡한 길가에 자리잡고 있지만 포장도 안된 마당에 차를 세우고(물론 파킹 퍼밋이나 주차료 따위도 없다), 좁은 문 하나만 통과하고 나면 마치 딴 세상, 딴 시간대에 온 것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정월 초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45분까지 문이 열려 있고 입장료도 없다. 다만 어른 1인당 2달러 이상의 기부가 권장된다고 조그맣게 써놓았다.
단체가 미리 신청하면 안내도 해주고, 입구 왼쪽 게시판에 혼자 둘러볼 수 있도록 그 안의 식물들에 관해 학구적으로 안내해 놓은 브로슈어를 읽어보며 다녀도 좋겠지만, 그런 것 없이도 얼마든지 즐겁게 다닐 수 있다.
가장 처음 들리는 것은 물소리다. 입구 왼쪽, 작은 바위 폭포 아래로 떨어져 흐르는 물은 시내를 이루며 흘러 내려가 연못에 모였다 또 흘러 내려가 남쪽 끝에 다시 한번 모인다.
시내가 흐르는 곳곳엔 작은 목조다리들이 놓여 길을 낸다. 그 첫 번째 다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소나무가 반기는데, 소나무 앞으로 가기까지 길 양옆에 자리잡은 모든 식물들 앞에 꽂혀 있는 작은 이름표들이 이곳이 수목원임을 상기시킨다.
잠깐 좁은 길을 지나면 나오는 광장에서 왼쪽은 할러데이와 8, 9월 한여름을 제외하고 매주 토,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문을 여는 ‘플랜트 세일’과 정원용품 및 선물용품점이 자리잡고 있고, 가운데로는 흰 피켓펜스가 둘려 쳐진, 오래돼 보이는 주택이 저만치 보인다.
1894년에 지어진 빅토리아풍 카티지인 이 건물은 풀러튼 최초의 의사중 하나로 검시관이자 시의원을 지낸 조지 C. 클락의 병원 겸 살림집으로 1972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출입문 유리에 ‘Doctor Clark’이라고 쓰여있는 이 집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안내인의 안내로 내부를 둘러볼 수 있고 주중에는 10명 이상의 단체가 미리 신청하면 볼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가운데 풀들 사이로 오리떼들이 앞뒤로 떼지어 다니며 놀고 있는 연못이 보인다. 온화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주로 심어진 오른쪽의 연못 앞뒤로 난 길중 하나로 접어 들어 내려가다 보면 경관이 좋아 보이는 요지마다 자리잡고, 말없이 앉으라고 권하는 듯한 나무 벤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저 나무 벤치로 세월의 풍상을 겪은 태가 역력한 자그마한 벤치들에도 거의 모두 이름표가 달려 있다. 이 학교 교수, 이 식물원에서 뛰어 놀았을 고양이 윙키등 대부분은 누군가를 추모하는 것으로 개중에는 인생의 교훈까지 새겨져 있다.
나무건, 선인장이건, 꽃이건 제 원래 모습대로 높게, 넓게, 시원하게 자라 보기 좋은 이곳의 나지막한 활련화 밭 사이의 한 벤치에 앉아보니 바로 몇 미터 밖 도시의 소음은 마치 방음벽처럼 배경으로 깔리고 가까이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 바람에 불려 떨어진 나뭇잎, 잔가지들이 또 바람에 땅바닥에서 이리저리 날리며 서걱이는 소리뿐. 꽃밭 사이로는 이름 모를 작은 곤충들이 바삐 기어다닌다.
시냇물이 끝나고 다시 나타난 큰 연못 주변은 열대 식물 지대, 거기서 동쪽으로 돌아가면서는 건조 지역 식물들로 크게 3등분한 이 식물원의 사이사이로 난 길을 잘 살펴보면 약초, 장미, 감귤류나 레드우드 등등이 종류별로 모여 있고, 매주 토요일 오전 9시30분에 열리는 ‘칠드런스 가든’을 지나 돌아가면 사방 15피트 너비의 커뮤니티 가든이 나온다. 개인이나 단체가 땅을 빌려 가꾸는 곳으로 30개쯤 되는 이 가든이 바로 이 수목원 탄생의 모체가 됐다. 1960년대말, 캘리포니아주 소유의 이 땅이 예정대로 칼 스테이트 풀러튼의 주차장이 되는 것에 반대하여 허가도 받지 않고 유기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일단의 교수, 학생들의 텃밭이 있었기에 1972년에 헤리티지 하우스가 옮겨 온 이후, 1979년에 풀러튼 식물원으로 정식 발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가든 옆, 감귤류만 모아놓은 시트러스 가든에서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린 오렌지를 따던 루스 차오는 이 수목원의 자원봉사자. 일주일에 한번쯤 나와 가지치기, 물주기, 과일 따기등을 돕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해마다 1월에 시작하는 매스터 가드너 과정을 수강하고 내쳐 자원봉사까지 하게됐다고 했다.
식물원 측에 따르면 연간 이곳을 찾는 사람은 1만1000여명. 수요일 정오 무렵, 벤치에는 쉬거나 공부하는 학생들, 점심 먹고 산책 나온 것 같아 보이는 사무직원들, 짧은 바지에 물통까지 들고 조깅하러 나온 아가씨들, 패스트푸드 봉지를 든 작은 아이들 셋을 데리고 온 엄마등 다양했다. 이곳은 헤리티지 하우스 뒤편으로 등나무 덩굴이 아치를 이루고 있는 곳, 커다란 나무 아래 층계형 벤치들을 둥그렇게 펼쳐놓은 곳등, 결혼식을 비롯한 작은 모임을 가짐직한 곳들도 많고, 또 대여도 해준다.
잘 생긴 나무, 부처가 그 아래서 깨달음은 얻었다는 보리수 같은 희귀한 나무, 이국적인 꽃등 볼 것도 많고, 그 근처엔 어김없이 어서 와 앉으라고 초대하는 듯한 벤치들이 놓여있는 이곳에서 가장 우리 정서에 와 닿는 곳은 대나무 밭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는 위에 놓인 다리. 주변은 키다리 레드우드들을 심었고 그 그늘에 파란 고사리들이 우거져 있는데 그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들리는 것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바람에 댓잎 부딪치는 소리뿐이었다.<김은희 기자>
풀러튼 수목원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성인을 위한 강좌를 연다. 2월 8일은 밸런타인 토피어리 만들기, 15일은 바이올린 옮겨심기, 3월 8일은 가정용 콤포스팅 웍샵, 22일과 29일은 식물 수채화 그리기 웍샵이 시리즈로 열린다.
강좌나 투어에 대한 문의 및 신청 (714)278-3579. 결혼이나 행사 예약 (714)278-4971 <김은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