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결정
2001년 11월 29일. 헌법재판소는 6백만 재외동포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한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한 재판을 벌였다. 이른바 재외동포법의 생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재판부의 결론은 헌법 불합치 판결. 2003년 12월31일까지 위헌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법률의 효력을 중지한다는 게 골자였다.
헌재가 제시한 불합치의 근거는 이 법이 재외동포의 개념을 1948년 이후 이민자로 한정한 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해방 이전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족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평등권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재외동포법은 시행 2년을 채 못넘기고 효력이 중지되고 말았다.
■재외동포법 출생의 비밀
당초 재외동포법은 예상밖의 산물이었다. 그동안 미주동포들의 주 요구는 이중국적의 허용. 미주총연을 비롯한 주요 단체들은 80년대 이후 틈만 나면 이중국적 인정을 요구했다.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통해 미주동포들의 처지를 잘 아는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은 호기였다. 김 대통령은 선거공약에서도 이중국적의 허용과 동포청의 신설을 채택했다.
그러나 집권 후 방향은 빗나가게된다. 중국등 관련국가의 실정과 국가 예산 그리고 국내 경제 사정은 공약의 이행을 어렵게 했다. 이중국적 대신‘재외동포법’이란 기형아가 탄생했다. 교민청은‘재외동포재단’이란 기구로‘격하’됐다. 즉 요구와 현실의 중간지대를 택한 편법인 셈이다.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와 국내 동포간의 일체감과 애국심 고취와 21세기를 주도할 열린 국가 건설이란 취지아래 2000년 1월 12일 국회를 통과했다.
■무엇이 문제였나
출발부터 재외동포법은 무리수였다. 법무부가 주도한 이 법률에 대해 외교통상부 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정부와의 외교 마찰을 우려했다. 조선족들에게 ‘문호’가 개방되면 중국 정부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조선족 동포들의 대량 입국으로 국내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정부가 법률의 혜택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해외로 이주한 사람으로 제한시킨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법률 제정부터 평등권 침해부담을 않은 채 태동한 것이다.
이에따라 한국 취업 바람이 불었던 재중 동포들의 입국은 여전히 제한됐고 밀입국, 불법 체류, 불법 취업 등이 끊이지 않았다. 동포문제에서 사회문제화된 것이다. 잘사는 동포는 대접하고 못 사는 동포는 무시한다는 비판이 잇따르며 이 법안은 결국 헌법재판소 행을 하게된다.
■재외동포법 어떤 내용인가
재외동포법의 본명은‘재외동포의 법적지위에 관한 특례법’.
재외동포들에게 출입국에서부터 체류, 취업, 선거권, 부동산·금융거래·의료보험·연금 등 생활 전 분야에 걸쳐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뿐만 아니라 병역특례까지 보장하고 있다. 이중 동포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핵심 내용은 출입국 및 체류조항. 재외동포 등록증을 발급 받으면 입국할 때 외국인 등록을 면제받을 뿐만 아니라 한번 입국할 때마다 2년의 체류기간이 보장되고 계속해서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부동산 거래 자유화. 특례법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제외한 모든 토지를 자유롭게 취득,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개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이 법은 오는 12월말까지 한시 통보를 받았다. 그 이전에 개폐의 운명이 결정지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재외동포 법을 폐지시키고 개별 관계법률에 의해 재외국민과 시민권소유자를 분리하여 보호하자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다만 지난 12월초 김석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재외동포정책 평가결과 보고회’에서 개정론과 폐지론의 주장을 수렴해 올 상반기까지 정부 입장을 확정짓기로 했다. 대선과 정권 교체기라는 정치적 시간표에 따라 미뤄지면서 새 정부로 공이 넘어간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이 이 법안 개폐의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노 당선자의 뜻은 밝혀진 게 없다. 그가 재외동포정책에 대해 언급한 것은 대선시“세계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재외국민 안전망을 구축하고 영사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것이다. 또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해 재외동포와 본국, 동포간 교류 및 유대강화를 모색할 것"이란 원론적인 입장이 유일하다.
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재외동포법과 관련 새 정부가 넘어야 할 벽도 역시 중국 정부. 주미 대사관의 최종문 영사는“결국 걸림돌은 중국 정부"라며“중국 정부는 조선족에 예외를 허용하면 소수민족 정책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적 노력과 특단의 대책없이는 재외동포법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은 셈이다.
■재외동포법 왜 필요한가
재외동포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우선 현실적인 접근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동안 이 법안의 시행으로 모국을 출입하는 불편이 현저히 해소됐고 또 부동산을 사고 파는 게 자유로워지는 등 혜택을 누렸다. 연금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모국과의 심리적 거리감도 좁혀졌다. 모국으로부터 차별 받는다는 피해의식이 반감된 것이다. 이를 역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게 미주동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인 것이다.
한민족 네트워크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존속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영근 워싱턴한인연합회장은“세계가 글로벌화한 상황에서 국경의 개념이 무력화됐다"며“독일, 이탈리아등 선진국에서도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추세인 만큼 적어도 재외동포법은 반드시 존속해야한다"고 말했다.
재외동포법에 대한 미주동포들의 기본 입장은“힘들게 마련된 재외동포법은 반드시 존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위헌 요소를 제거해 혈통을 위주로 한 재외동포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동포법이 개정되길 바라고 있다.
이에따라 미주총연은 신년들어 재외동포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이오영 회장은“새로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중대 사안임을 촉구하기 위하여 100만인 서명 운동에 들어갔다"고 취지를 밝혔다. 미주총연은 새 정부와 국회에 재외동포법 헌법 불합치 요소를 서둘러 개정하여 존속시켜 줄 것을 바라는 건의문도 제출할 계획이다.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