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전쟁은 수많은 인명 살상과 천문학적인 전비를 수반한다. 그 뿐이 아니다. 대량 파괴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손실을 초래한다.
그런 엄청난 손실은 고스란이 전쟁 당사국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전쟁을 하려는 측은 어떻게든 마땅한 명분을 찾기에 노력한다. ‘명분’은 국민들이 그 손실을 감수하게 만든다. 적국의 입지를 좁히고 주변 국가의 협력도 끌어낸다.
부시대통령이 그동안 이라크를 공격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명분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이제는 임박한 것 같다. 미군은 이미 모든 전쟁 준비를 마치고 부시대통령의 ‘공격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제 충분히 이라크를 공격할 명분을 축적했는가. 아직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내젓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물론 상당수 미국인들까지 그렇다.
겉으로 드러난 이번 전쟁의 명분은 부시가 천명한 대로 ‘악의 축’의 제거다. 부시는 이라크 지도자 후세인을 군사적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한 축으로 지목, 전쟁을 통해 그를 축출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하려하는 유일한 대외 명분이다.
물론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영국의 더 타임즈는 미국에 이번 전쟁을 하려는 목적을 ‘이라크의 군사적 위협 때문이 아니라 석유와 돈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그렇다면 이 ‘속 명분’은 오늘날과 같은 개명천지에서 합당한가.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합당 여부를 따져봐야 실효성이 없다. 그것은 전쟁의 공개적 명분이 될 수 없고 전쟁을 하고자 하는 측도 그것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당사자가 아니라면 이슈화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후세인은 물론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하고 있는 괴이한 행적을 보면 현대사회에 그런 권력자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결코 그를 두둔하고 싶지 않다.
특히 미국입장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골치 아픈 존재임이 틀림없다. 성질대로라면 벌써 한방에 쳐부쉈겠지만 합당한 명분을 찾지 못해 속앓이를 해온 것이다.
칼럼니스트 존 르까레는 부시정권의 이런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준 사람이 ‘오사마 빈 라덴’이라고 꼬집는다.
빈 라덴의 뉴욕 테러는 한순간에 전 미국인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부시정권은 이를 기회로 아무 어려움 없이 테러전쟁을 시작했고 그 타겟을 후세인으로 확대했다. 부시는 빈 라덴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를 사담 후세인에게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다. ‘테러와 전쟁’이라는 명분은 부시정권이 안고 있는 여러 곤란한 문제들을 편리하게도 한꺼번에 덮어버렸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쟁을 할 수 있는 필요 충분한 명분인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달을 전쟁대기 상태 속에서 그 명분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않다.
게다가 전쟁이 가까워지면서 미국 안팍에서 반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내 응답자의 72%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쟁 개시를 정당화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 LA타임스 여론조사는 최근의 반전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지난 주 CBS뉴스/뉴욕타임스 공동 조사에서도 64%가 군사적 방법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원했다.
부시정부는 그러나 기어코 전쟁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것도 이제는 더 못 기다리겠다는 자세다. 우방이 반대하면 단독으로라도 이라크를 치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과 우방의 지지가 없는 전쟁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국민의 강력한 지지 없이 전쟁을 강행할 경우 재앙을 가져온다’는 LA타임스의 경고는 그래서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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