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광촌으로 돌아가는 성정바오로천주교회 박순신 신부
"이민자의 삶은 너 나 없이 고단합니다. 그래서 이 곳 교회의 역할은 더욱 소중하고, ‘샘터’가 되고 ‘쉼터’가 돼야합니다"
4년 여 성 정 바오로 한인천주교회를 "먼 길 걷는 목마른 자에게 정신의 양식을 주는 ‘샘’으로, 또 피곤한 생활에 찌든 몸을 편히 누일 ‘쉼터’로" 가꾸다 본국으로 귀임 하는 박순신 프란치스코 주임신부(사진)는 떠나는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사제라면 꾸며서라도 세속의 ‘정’을 드러내지 않을 만 하지만 두고 가는 정이 너무 아쉽고 또 가슴이 저려서다. 벌여놓고 끝내지 못한 일도 발길을 무겁게 한다.
그의 표현 대로면 ‘지구 끝에서 지구 끝으로’ 자리를 옮기는 박 신부는 찾아갈 ‘하늘아래 첫 동네’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 장성 마을보다도 ‘세계의 수도’ 워싱턴에 남아있을 말쑥한 신도들의 가슴앓이들이 덜하지 않게 안타깝다.
그래서 그는 떠나며 "슬픔도 기쁨도 같이 나누고 서로 사랑하며 자비심이 넘치는, 그래서 만나면 그냥 반가운 공동체를 이루어달라"고 가장 힘주어 당부했다.
"이민을 올 때는 남 보기는 번듯하더라도 상처받아 온 경우가 많다. 이 상처는 치유가 쉽지 않은 종류들이다. 오래 가고 끝없이 안고 가는 상처다. 이민자에게 종교의 의미는 그래서 남다르다."
박 신부가 본 이민자들의 가슴 속이다. 그런데 이것도 치유불능은 아니다. "조금만 사심을 버리면 상처는 치유된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임을 느끼고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박 신부가 버지니아의 성 정바오로 한인천주교회에 부임한 것은 지난 1998년 11월 27일. 복음이란 모든 인류를 향한 것이지만 그래도 "내 민족, 내 겨레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우선적 사명으로 여겨 외국은 큰 관심이 없었는데 여기도 한국말로 신앙생활을 하는 한국사람이 있음을 알았고 "그 목자가 돼 문화적 충돌의 조정역할을 해내야한다는 짐을 느끼며" 미국 땅을 밟았다.
그래서인지 박 신부는 ‘파격’도 서슴지 않았다. 추석이나 설날이면 차례 상을 차리고 큰 절을 나눴다. 개신교 쪽에서 보면 기겁을 할 일이다.
"미국에 살면서 추석을 왜 쇠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땡스 기빙은 또 미국인이 아니어서 안지낸데요." 철저한 한국인, 철저한 미국인이 동시에 돼야할텐데, 문화는 향기와 같은 것이어서 저절로 풍겨나와야 하고 그래서 때로는 세레모니도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어쨋든 신자들은 명절날 성당에서 큰 절을 올리고는 울고 돌아갔다.
여신도들에게 꼭 미사포를 쓰도록 한 것도 유명하다.
박 신부는 속시원한 명 강론으로 인기가 높았다. "강론 끝나면 바로 다음주 강론 걱정하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신학적 깊이와 함께 절로 묻어나는 그의 성품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강론을 관통하는 큰 틀은 "정직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라." 그의 거침없는 언어를 빌면 "잔머리 굴리지 말라"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신도 수 5,000을 헤아리는 큰살림을 차질 없이 이끌면서 주차장 확장을 마무리했고 청소년 교육관인 ‘하상관’ 건립을 주창, 교구청의 융자 확약을 포함한 행정적인 모든 절차를 마쳤다. 그러나 400만 달러가 드는 일을 후임자에게 짐 지우는 게 끝내 마음 편치가 않다.
"웃으면서 활기차게 왔다가 또 힘차게 갑니다. 곱게 쌓은 정은 두고 떠납니다. 신자들이 믿고 나의 방향으로 따라준 것이 고마왔고 또 보람이었습니다."
박순신 신부는 2월9일 미사집전으로 미국 사목활동을 끝내고 15일 한국사람도 이름조차 생소한 ‘지구 끝’ 새 임지로 떠난다.
<권기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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