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새해들어 내놓은 경제정책의 골격은 대규모 감세정책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7일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앞으로 10년간 각종 조세감면과 정부지출 증가 등의 형태로 6,740억 달러를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의 모든 부분이 건전하고 활기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만족할 수 없으며, 모든 기업이 성장할 기회를 찾고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구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측은 이 조치로 9,200만명의 납세자가 올해 평균 1,083달러의 세금을 덜 내게 됐으며, 앞으로 3년간 21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이 미국 경제를 살리는데 약이 될 것인지, 독이 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분분하다. 우선 감세안의 초점이 이른바 ‘투자가계급(investor class)’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짚어보자.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과 몸뚱이 하나만으로 일하는 노동자계급으로 나눠진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소유가 유가증권화한 주식으로 대체되고, 주식이 증권시장을 통해 일반대중의 손에 넘어가면서, 주식대중주의가 실현됐다. 소유의 분산이 이뤄지고, 자본가 계급이 대중화하면서 두터운 ‘투자가계급’이 형성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투자가계급을 겨냥한 감세안의 핵심은 배당소득세 철폐다. 배당세 폐지로 주식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3,640억 달러로 전체 감세액의 54%에 해당한다. 이는 증권시장을 살려 경기를 회복시키려는 경제 논리와 대선에 증권투자자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시 대통령의 배당세 폐지 아이디어는 30년 전에 뮤추얼 펀드계의 대부로 알려진 찰스 스왑으로부터 나왔다. 지난해 7월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그곳에서 가까운 와코라는 곳에서 경제정책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에 찰스 스왑 회장이 참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이 추진하는 감세 정책의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연히 이 행사에 참석했다.
연사로 나선 스왑 회장은 주식 배당에 부과되는 세금(배당세)를 폐지하면 증시가 상승하고, 그러면 경제가 활력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스왑 회장의 아이디어에 귀가 번쩍 뛰었다. 그날로 경제 비서진에게 지시해 배당세 폐지에 관해 연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면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의 정치적 공략 타깃이 된 투자가계급은 어떤 존재인가. 미국의 투자가계급은 지난 90년대 뉴욕 증시의 장기 호황으로 급격히 팽창, 미국 경제와 정치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주식투자인구는 미국 전체인구의 절반이 넘으며, 유권자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공화당은 ‘중산층=주식투자 계층’이라는 등식을 설정하고, 주가가 오르면 중산층의 지지를 얻는다는 정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백악관측은 배당세를 폐지할 경우 수혜 납세자가 3,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배당세 폐지로 주가가 10~20%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안은 민주당이 비난하는 것처럼 ‘부자들의 잔치’에 불과하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이번 감세안이 전체 납세자의 1%에 해당하는 부유층에게 혜택의 42%가 돌아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도적 연구기관인 예산정책 연구센터는 소득 상위집단의 10%가 전체 주식과 채권 시가총액의 85%를 차지하고 있다고 조사했다.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은 투자가 계급을 정치적 우군으로 확보하면서, 부자를 지원하면 가난한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트리클 다운(trickle-down) 이론에 입각하고 있다. 결국 투자가계급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면서 미국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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