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핵무기가 없다. 그렇지만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 공공연히 핵 위협을 하고 있는 북한이다. 그런데 미국은 유화적이다. 판독이 어렵다. 미국은 이중의 잣대를 사용하는 것인가.
미국내 보수파 시각으로 보면 결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병불염사(兵不厭詐)라고 했던가. 병사(兵事)에 있어서는 적을 속이는 꾀를 꺼리지 않는 법이다. ‘핵을 가지고 있는 정신병자를 다루는데 있어 위선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 미국내 보수파 논객의 주장이다.
‘바그다드를 통해 평양으로’ 선명한 보수노선을 지향하고 있는 월 스트릿 저널의 최근 사설 제목이다. 빨리 이라크를 공격하라는 게 이 사설의 요지다. 그래야만 북한 핵위기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라크 타도는 핵위협을 하고 있는 다른 독재자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달리 이라크는 석유가 있다. 언제든지 재기해 핵무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산유국들이 사담의 핵인질이 됐을 때를 가정해 보자. 그야말로 악몽이다. 북한 핵위기는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이유는 이렇다. 먼저 약한 적을 섬멸하고 그 다음에 강한 적을 제거하는 게 순서라는 것. 2차 대전시 독일 공격에 앞서 이탈리아를 먼저 침공한 게 바로 이런 원리다.
후세인을 제거할 때 오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미군의 기세가 오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 북한에 주는 심리적 타격이 여간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로 초점이 모아진다. ‘체제변화’ 다른 말로 하면 ‘정권교체’가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궁극적인 전략목표라는 것이다.
패권주의 보수파들의 제멋대로의 논리일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 사람들과 맥이 통한다는 점에서다.
이들이 제시하는 북한 핵문제 해법은 ‘철저한 불신’에 근거한다. 북한은, 더 정확히 말해 김정일체제는 근본적으로 스탈린식 공산주의다.
북한 인민의 안녕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거짓말을 할 태세가 돼 있는 집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출발한 접근법이다. 또 북한체제가 연장되면 될 수록 북한 주민들이 고통을 받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진단이다. 그러므로 북한체제를 미국은 주권국가로 결코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전략 목표는 확고하다. 반(反) 인륜적 체제인 북한의 핵무장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 전략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술도 이미 짜여진 것 같다. 부분적 변화는 가능하지만 대체로 이런 식이다.
“한국과 일본 미국의 두 맹방과의 공조체제를 공고히 다지면서 중국을 끌어 들인다. 북한을 외교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다. 경제 제재, 보이콧, 금수조치 등이 뒤따른다.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대한 검색이 시작된다. 중동지역에 대한 무기 수출이 적발되면 가차없이 차압한다. 그 다음 단계는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조여가는 것이다…”
타임 테이블도 정해져 있다. 우선 이라크 공격이 끝나야 하므로 초기단계는 외교적 방법에 매달린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때까지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전열에 균열이 생겼다. 반(反)미라는 ‘독일병’이 한국에도 전염된 것이다. 그 무드를 타고 한국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미국내 보수세력은 몹시 당황해 하고 있다.
“냉전 종식은 미국의 한국 정책에 있어서 지게 될 위험과 보상의 균형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우리는 한국의 안보에 한국이 책임을 지도록 정책변화를 진작 꾀했어야 했다…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전에 조치를 취했더라면 강력한 외교를 펼치는 데 있어 오늘날 보다 훨씬 더 많은 군사적 선택권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 문제를 뿌리부터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군 철수 의사를 밝혀라. 많은 한국인들이 기뻐할 것이다….”
보수 논객 애덤 가핑클의 주장이다. 한국은 이제 스스로 방위하도록 놔두라는 것이다. 불운이 닥쳐와도 한국이 처리할 문제지 미국이 간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언짢은 기색이 행간 행간에 역력히 나타나 있다. 다른 보수 논객들도 반미감정에 격앙돼 논리와 감정이 뒤섞인 미군 철수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로 그칠 것 같지 않다. 북한 핵 위기의 책임을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미국 측에 돌리는 데 대해 진보 노선 논객들도 비슷한 감정 노출을 하고 있어 하는 말이다. 미군 철수는 과연 이루어질까. 한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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