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여론주도층-일반인 ‘반미’에 배신감
알력 심화 땐 한인 ‘새우등’ 터질 수도
주류언론에 민심 전달 오해 불식시켜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제 2의 도약을 다짐하고 있는 이 때 한국에서의 ‘반미’ 움직임이 은근히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미국인들이 ‘반미’에 ‘반한’으로 맞서고 이곳에 사는 우리 한인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인식을 갖지 않을까 해서다. 미국인들의 ‘반한’이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가벼이 넘길 사안은 아니다.
2차 대전 때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면서 미국에 살던 일본인 연인이 수용소로 끌려갔다. “당신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함“이란 게 당시 당국의 설명이었다. 삭막한 외딴 지역에 마련된 수용소에 이들 연인은 갇혔다. 여름엔 무더위를 겨울엔 추위를 견뎌야 했다.
당국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이들이 수용소 초소의 기관총이 자신들을 겨누고 있음을 보고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데려왔다면서 왜 저 총이 우리를 향하고 있냐”고 묻자 수용소를 관리하던 미군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이들 연인은 약 4년간 수용소에서 죄인과 같은 생활을 했다.
이들 연인의 아들로부터 이 같은 슬픈 사연을 전해들은 한 한인은 반드시 남의 얘기가 아니라며 작금의 ‘반미’ ‘반한’ 분위기에 북한 핵 문제까지 불거져 불행한 사태로 진전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 핵 문제가 미국과의 전쟁으로 이어져 한인에게 불똥이 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인들이 미국에 사는 아랍계와 아랍계로 보이는 무고한 주민들에게 폭력적인 분풀이를 한 사실을 상기해 보자. 이들에게 한 것처럼 한인 업소에 전화를 걸어 “미국을 떠나라”고 협박하거나 한인 주유소에서 불매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한인 식당이나 교회에 인종증오 낙서를 하거나 한인 아파트 창문으로 돌을 던질 수도 있다. 캠퍼스 내에서 한인학생들을 집단구타하고 비하발언을 서슴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나친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의 반미 움직임이 지속되거나 강도를 더해 가면 미국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반한’ 대상에 미주한인들도 뭉뚱그려질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반미’의 명분과 타당성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낮선 땅에 와서 고군분투하는 한인이 한미 양국의 갈등으로 애꿎은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자는 것이다. 1%의 가능성이 현실화했을 때 우리가 당할 피해가 엄청나서다. 실제 최근 미국인들 가운데 ‘반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LA총영사관에 이메일로 불만을 터뜨리는가 하면 미 대학의 한인교수에게 ‘반한 감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들은 “여중생 사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동안 많은 미군이 한국에 머물면서 이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게 없고 미군의 범죄가 한국인의 범죄에 비해 비율이 낮은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 나올 게 아니라 동북아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군문제를 봐야 한다” 등의 유순한 반응에서 “미군을 철수한 뒤 북한군이 남침했을 때 한국이 우리의 도움을 구걸하도록 하자” “철수 한 뒤 한국이 도와달라고 애원해도 모른 채 하자”는 강경한 대응도 있다.
미국 회사에 다니는 한 한인은 “평소에 친절하던 동료들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반미, 북한 핵 문제로 시끄러워지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반미’ ‘반한’ 핑퐁게임이 계속되면 미국회사에 다니는 한인들이 직장 생활에 애로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한’이 여론주도층에서 주로 발산되고 있지만 민심은 표변하는지라 언제 어떤 형태로 퉁겨져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한인들이 챙겨야 할 부분은 본국에도 있다. 일부 한국인들이 한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핀잔을 주고 자존심 상하는 말을 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한 고교생은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속상했다고 한다. 전화를 건 친구가 대뜸 “지금도 미국시민으로 살고 싶으냐, 너는 배신자”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과 미국의 알력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불구경하 듯해서도 안 될 일이다. 고향은 한국이지만 미국은 ‘제 2의 고향’인 까닭이다. 어떻게 해서든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인들에게는 소파(SOFA)개정 요구를 ‘반미’로 확대 해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반미’ 주창자들이 있긴 하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목소리가 자유롭게 개진되는 것은 한국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할 정도로 성숙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도 한국의 변화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됐는데도 마냥 어린이 취급하려 든다면 대들지 않을 아이가 없을 것이다.
한인 단체들은 세미나를 개최해 한인 입장에서 ‘반미’ ‘반한’의 원인과 해소방안을 논의하고 이런 분위기가 자칫 ‘반한인’으로 번지지 않도록 건설적인 생각들을 나눠야 한다. 또한 주류언론에 우리의 입장과 우려를 표명하는 글을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해 “미국은 좋은 친구”라고 말해 ‘반미’가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 잠복성을 부인하는 것은 순진한 판단이다.
자긍심이 커진 한국인들이라 ‘반미’는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반미’와 ‘반한’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자리는 흔들리게 된다. 허둥댈 일은 아니지만 나 몰라라 할 일도 아니다. 분명 한인사회의 중요한 현안이다. 마음을 곧추세울 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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