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은 한때 백만인의 상식이었다. 인간은 도구와 언어를 사용하며 영혼과 도덕률이 있고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는 반면 동물에게는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인간과 동물을 갈라놓는 ‘방화벽’에 구멍이 나기 시작한 것은 다윈 때부터다. 인간의 조상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급동물에서 진화한 것이라면 인간과 동물이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추론이 가능하게 된다. 인간과 동물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도덕률의 존립 근거는 물론이고 영혼의 구원 등의 문제도 정당성을 의심받게 된다. “다윈의 주장이 사실일 리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것이 일반에 알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한 영국 귀부인의 발언은 진화론이 종교와 도덕에 미칠 파급 효과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1859년 ‘종의 기원’이 발간된 후 진행돼 온 과학적 연구 결과는 인간과 동물간의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일본 원숭이 중에는 밭에서 감자를 캐 바다가로 가져와 바닷물에 찍어 먹는 족속이 있다. 우연히 누군가가 감자를 그냥 먹는 것보다 소금물에 찍어 먹는 것이 맛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이것이 전 부족에 전파돼 그 후로는 자자손손 새로운 요리법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오랑우탄 부족들 사이에도 취침 시간부터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다.
침팬지에게 언어교육을 시키면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뭇가지를 꺾어 구멍에 넣어 개미를 잡는 낚시꾼 원숭이는 동물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만들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할 줄 아는 것 치고 동물이 하지 못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일까. 하나 있기는 있다. 학자들 사이에 잘 거론되고 있지는 않지만 장사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실험실에서나 자연상태에서 ‘내가 꿀 한 줌을 줄 테니 바나나를 한 개 다오’라는 의사 표시를 해 물물교환을 하는 원숭이는 발견된 적이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동물이 하지 못하는 것 또 하나는 내일의 풍요를 위해 오늘의 배고픔을 견디는 것이다. 내년 봄에 뿌릴 씨앗을 남겨두기 위해 오늘 굶주린 배를 움켜쥐는 침팬지는 없다.
인류가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온갖 기복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것은 다가올 번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할 줄 아는 인내가 있기에 가능했다. 기술혁신에 필요한 투자와 이를 가능케 하는 저축이야말로 경제 번영의 원동력이다. 오늘 번 돈을 오늘 다 써버리는 일을 반복한다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동물의 삶과 차이가 없다.
부시 대통령은 향후 10년간 6,700억달러에 달하는 경기 부양안을 발표했다. 배당금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 주식 투자를 촉진하고 자녀 1인당 세금 크레딧을 1,000달러로 올려 소비를 촉진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언뜻 보면 큰돈 같지만 연으로 따지면 600억달러 조금 넘는 돈이다. 연 10조달러에 달하는 미국 경제를 부양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경기가 정부가 ‘살아나라’ 해서 살고 ‘죽어라’ 해서 죽는 물건인가 하는 점이다. 경기가 정부 마음대로 움직여준다면 경기 사이클은 오래 전에 사라졌어야 옳다. 정치인 치고 불황이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호황과 불황의 순환은 움직일 수 없는 철률이다. 호황의 거품 속에 불황의 싹이, 불황의 조심스러움 속에 호황의 씨앗이 잉태돼 있다. 인위적인 소비촉진은 단기적으로 경기를 반짝거리게 할 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경제 발전을 해친다.
인간은 누구나 못 살기보다는 잘 살기를, 자기가 흘린 땀의 수확을 남에게 주기보다는 내가 갖기를 원한다. 경제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낮은 세금과 적은 규제를 통해 최대한 경제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의 앞날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단기처방이 아니라 과감한 경제적 자유의 확대라는 점을 유권자나 정치인 모두 기억해야 한다.
민 경 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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