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직장에 출근한 한 한인 여성이 미국인 동료와 나눈 농담조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 여성이 미국인으로부터 들은 첫 마디는 “너의 남편 지금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한인 여성이 “여기에 있다”고 하자 그 미국인이 “Thank God”하더란다. 이유는 지금 북한서는 핵문제로 연일 시끄럽고 남한서도 대규모 혁명이 일어나고 있으니 거기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지금 미국인들의 심리 속에는 이런 반한 감정이 소리 없이 싹트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서는 계속 반미시위가 일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여중생 사망사건은 한미간에 맺어진 행정협정, 즉 미군지위에 관한 협정 SOFA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서 일어나는 시위를 보면 마치 미국과의 사이에 모든 관계를 전면 부정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미국 내에서는 이 사건이 군사훈련 과정에서 일어났으며 피해자에 대한 미국측의 배상이 이루어졌고 부시 대통령이 사과를 거듭 표명했다는 점등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 협정이 물론 잘못됐다 생각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점은 양국간의 정치적인 협상을 통해서 얼마든지 수정 또는 개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미국도 이 점에서는 어디까지나 동의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두 국가간에 외교적인 차원에서 다루도록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문제에 계속 집착하며 반미운동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문제가 악화돼 자칫 미국인들 사이에 반한 감정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요즘 미국 방송에서 보면 한국의 촛불시위가 자주 등장하는데 볼 때마다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하다. 이를 보고 기성세대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국동란에 대해 잘 모르고 한미관계에 얽힌 깊은 내막을 간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를 알 리가 만무하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150만 미주 동포들의 입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반미시위를 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만일 미국인들 사이에 한인에 대한 적개심이 싹튼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주로 영세업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한인 동포들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일반 동포들도 이런 저런 압박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동포들의 이런 입장을 생각한다면 한국에서 그렇게 함부로 시위를 해서 될 일인가. 지금의 시국은 반미시위나 하고 문제를 확산시킬 그런 때가 아니다.
월드컵 축구나 대통령 선거 때와 같이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계적으로는 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 뭐 한다 야단이다. 그런 시기에 공연히 반미감정이나 부추기며 여론을 부정적으로 몰아가서는 곤란하다.
현재 미국 내 여론은 테러리스트 국가들에 대해 완전히 적대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또 다시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면 동포들의 입장은 난감해 질 수밖에 없다. 그것도 모르고 한국에서는 덮어놓고 반미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은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피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 위기 때는 언제라도 우리의 국방을 보호해 주고자 나설 수 있는 우호관계의 혈맹국가다.
북한은 지금 남한의 햇볕정책으로 그동안 배만 불러 오히려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 그들이 언제, 어느 때 우리한테 총부리를 대고 겨눌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미국에 대고 ‘양키 고 홈’ 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대규모 촛불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개입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동포사회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여론을 모아 우리의 입장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새해 초부터 대대손손 내려온 한국인의 흑백논리, ‘너 아니면 나’ 사상이 오늘의 이런 현실을 불러오지 않았는가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여주영/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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