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의 아메리카’

NYT등 100년전 미국신문 들춰보니…

103명의 이민선조를 태운 게일릭호가 호놀룰루 부두에 닻을 내린 1903년 1월13일 화요일, 하와이와 미국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호놀룰루 현지에서 발행되던 일간지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 및 LA와 뉴욕의 대표적 신문인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의 1903년 1월13일자 신문을 통해 100년 전의 사회상을 들여다보았다.

?NYT “해군장관 마차사고로 중상”
?LA타임스 “연방검사에 흑인 임명”
?애드버타이저 “가축협 컨벤션 열려”

‘시대의 기록’인 신문은 타임캡슐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한다. 당시 신문들을 들춰보면 10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본 1903년 1월13일은 주목을 끌만한 사건이 거의 없는 지극히도 평범한 날이었다. 당일 발행된 3개 신문은 눈길을 잡아끄는 큼직한 기사거리를 담고 있지 않았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1면 머릿기사는 연방의회가 석탄 관세 면제안을 승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 외 제1면에 실린 중요한 사건이라고는 윌리엄 무디 해군장관이 마차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거나, 오스트리아 제국의 론네이 백작이 가정불화 끝에 레오폴드 왕의 딸인 부인 스테파니 전 황태자비를 차버렸다는 외신뉴스 정도였다.
뉴욕타임스의 당시 가판가격은 1부당 1센트였는데 고급 구두 한 켤레에 2달러40센트, 남성 셔츠를 1달러5센트라는 1면 광고와 비교하면 1903년초 뉴욕 물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기사보다 광고가 당대의 사회상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LA타임스(The Times)의 같은 날짜 1면 기사도 신통치 않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보스턴 지역 연방검사로 흑인 윌리엄 루이스를 임명할 예정이라는 것이 그 날의 톱기사로 흑인 등용을 둘러싼 남북 간 해묵은 갈등을 시사하고 있다.
그 외 바로 전날 취임한 제13대 캘리포니아 주지사 조지 파디의 취임 파티가 1,500여명의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새크라멘토에서 흥겹게 열렸으며 앞서 주하원 의사당에서 크리스마스 장식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했으나 다행히 곧 진화됐다는 기사 등이 크게 게재됐다.
당시 1부당 5센트에 판매된 LA타임스는 제1면 왼쪽 난을 연예 광고 및 게시판으로 채우는 등 아직 커뮤니티 신문의 모습이 두드러졌다. 광고 중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차량을 이용한 LA 시내관광을 50센트에 할 수 있다거나 카탈리나 섬 관광객을 모집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LA는 당시 시인구가 약 10만명, 카운티 인구가 약 17만명이었다.
만일 게일릭호에서 내린 103명의 이민 선조들 가운데 누군가 1월13일자 하와이 현지 발행 신문을 5센트에 샀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Honolulu Advertiser)의 전신인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The Pacific Commercial Advertiser)였을 것이다. 이 신문은 캔사스시티에서 4일 동안 열린 전국 가축협회 컨벤션을 톱뉴스로 다뤘고, 연방상원 상임위원회가 하와이와 관련해 내린 결정을 신속한 보도로 유명한 AP통신보다 거의 1주일 앞서 실었다며 자사의 특종을 한껏 자랑하는 기사를 실었다.


1903년 세계는

러시아 볼셰비키 창당
파블로브 ‘조건반사’ 실험

한편 1903년은 유럽에서는 7월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두 갈래로 분할되면서 볼셰비키 공산당이 탄생한 연도이기도 하다. 같은 해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브의 유명한 조건반사 실험이 발표됐고 극작가 안톤 체홉이 그의 마지막 희곡 ‘체리 과수원’(The Cherry Orchard)을 집필했다. 영국에서는 여성의 참정권을 얻기 위해 여권단체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이 결성됐으며 작가 헨리 제임스의 소설 ‘대사들’(The Ambassadors)이 출판됐다. 프랑스 건축가 오거스트 페레가 파리에 사상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 블럭을 디자인하고 퀴리 여사가 순수한 라듐을 추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1903년에 프랑스 화가 폴 고갱과 까미유 피사로, 작곡가 휴고 볼프 등이 사망하고 영국 작가 조지 오웰, 컴퓨터 선구자인 수학자 존 폰 노이만, 코미디언 밥 호프 등이 출생했다.

1903년 미국은

라이트 형제 사상 첫 비행 성공
포드·올스모빌 자동차 시판나서

한인 미주이민의 원년인 1903년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연도는 아니지만 국제정책에서부터 라이프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취하기 시작한 과도기의 정점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1903년의 미국 인구는 8,000만명이었고, 애리조나,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알래스카, 하와이 등지가 주로 편입되기 전이라 45개 주로 연방이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시어도어 루즈벨트 26대 대통령아래 강대국의 지위를 추구한 미국은 콜롬비아 식민지였던 파나마의 독립을 선동해 11월18일 파나마와 운하 조약을 체결, 아메리카 대륙을 무대로 수퍼파워에 이르는 계기가 됐다. 또 알래스카 국경을 놓고 캐나다와 분쟁이 있었으나 최종 국경이 10월 미국에 유리하게 확정됐다.
한편 위스콘신주가 5월 당원 유권자들이 후보를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직선 예비선거제를 채택, 오늘날과 같은 민주적 선거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2월에는 연방 통상노동부가 9번째 내각 부서로 신설되는 등 연방정부의 성장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1903년에 일어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사상 최초로 동력비행기를 조종한 라이트 형제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빌과 윌버 라이트 형제는 12월17일 ‘키티 호크’(Kitty Hawk)를 조종, 지속적인 비행에 성공하면서 항공여행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 헨리 포드가 포드자동차 회사를 설립, 자동차 산업의 원년을 이루었으며 디트로이트 출신 자동차 선구자인 랜좀 올즈가 올스모빌 3,000대를 대량 생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포드자동차도 곧 시속 30마일까지 달릴 수 있는 A모델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7월부터 대당 850달러에 시판했고 뉴욕시가 이듬해 처음으로 자동차 속도제한을 채택, 시내 시속10마일, 시외 시속 20마일 이하로 제한하는 등 자가용이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자동차로 사상 최초의 미국 횡단 여행을 한 것도 바로 1903년으로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뉴욕에 도착하기까지 63일 15시간이 걸렸다. 한편 킹 캠프 질레트는 안전 면도기를 발명, 곧 구식 면도칼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또 에디슨 회사는 12분짜리 단편 영화 ‘대단한 열차강도사건’(The Great Robbery)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할리웃 영화의 발판을 놓았다.
마르코니가 발명한 무신전선 서비스가 뉴욕과 런던 사이에 개설되고 7월에는 퍼시픽 통신 케이블이 개통되는 등 정보시대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1903년의 일이었다.
한편 야구가 미국의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으면서 사상 최초로 열린 월드시리즈에서 아메리칸 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내셔널리그의 피츠버그 파이러츠를 5승3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대학 풋볼 우승은 프린스턴 대학에 돌아갔다.
문학적으로는 잭 런던의 소설 ‘황야의 부르짖음’(The Call of the Wild)’과 흑인운동가 W.E.B. 드보아가 저술한 ‘흑인의 영혼’(The Souls of Black Folk)이 출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