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된 한인’ 못잊을 월드컵 감동
로즈 퍼레이드 꽃차 출품 등
이민100주년 사업 준비 분주
영주권자 잇단 공항체포 경악
자살 유난히 많아 LA서만 12명
한국 대선 개혁바람 관심높아 2003년은 월드컵 주최국으로서, 또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일궈 낸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미주 한인들에게도 한껏 고취됐던 한해로 기록된다. 100년 미주 이민사를 세계에 알리는 기념사업, 로즈퍼레이드에 출품되는 한인이민 꽃차 등과 함께 한인사회에 영원히 기억되는 한해이기도 하다. 저물어 가는 1년을 차분히 정리하는 자세로 그 동안 사회부 기자들이 현장을 달리며 메모했던 취재 수첩을 들쳐보며 한해를 되새겨 본다.
■ 참 석 자
권기준 부장, 김정섭 차장, 황성락 차장, 조환동 차장대우, 구성훈 기자, 김종하 기자, 김경원 기자, 김상목 기자, 이의헌 기자, 김정호 기자
-2002년 LA뿐 아니라 전세계 한인 촌을 뒤흔들었던 월드컵은 한민족 가슴속에 영원히 각인된 대 사건이자 흥분이었습니다.
▲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6월 한 달 동안은 거의 매일 월드컵 관련 취재와 기사작성을 하느라 힘도 들었지만 정말 신나는 기간이었습니다. 한국 태극전사들이 승전보를 전할 때마다 기쁨에 겨워 신문사에 전화를 해왔던 독자들의 감격에 겨운 목소리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장 극적이고 감격적인 순간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월드컵 때 보여준 한인들의 응원열기와 성숙한 시민의식에 주류사회는 물론 우리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6월 한달 동안 에퀴터블 빌딩 주차장, 코리아타운 갤러리아 등 한인사회 곳곳에서 울려 퍼진 붉은 악마의 함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특히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2, 3세 젊은이들이 한국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한인들이 역시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옛 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03년은 한국을 떠난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 이민 선조들이 하와이에 도착한지 꼭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 한해 한인사회는 특히 2003년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로 바빴습니다. 남가주 이민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패사디나 로즈퍼레이드 참가 승인을 받아내고 꽃차 디자인을 결정하는 등 신년 벽두에 펼쳐지는 로즈퍼레이드는 한인들의 큰 관심 속에 열리게 됐습니다.
▲올해 이민 100주년 기념 준비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이민사의 영웅들’ 선정이었죠. 미주한인사회를 대표해 이민 100주년 꽃차에 탑승, 전세계에 한인 이민사를 빛낼 영웅들을 뽑기 위해 본보 주관으로 각계 전문가들도 짜여진 선정위원회가 구성됐었습니다.
-지난해 테러이후 한층 강화된 미국내 안보 정책의 불똥이 소수계 이민자들에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9월부터 연방이민국이 5년, 10년전이라도 체포나 형사기록이 있으면 해외출국후 입국하는 한인 영주권자 10여명을 연이어 체포, 구금하면서 한인사회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한국을 여러차례 방문해도 아무일도 없다가 갑자기 체포하기 시작하니깐 당사자들이 황당했던 것은 당연하지요.
▲장애장인데도 크리스마스를 얼만 안남기고 몇 년 전의 범죄 기록 때문에 공항에서 체포돼 1년간 구금됐다가 추방된 이상원씨의 경우도 테러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테러의 여파로 영주권자는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위기감이 퍼지면서 한인사회에 ‘시민권을 취득하자’는 의식이 생겼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이 미국으로까지 건너오고 있습니다. 김순희씨를 비롯한 탈북자 3명에게 망명이 허가된 것은 미국의 대 탈북자 정책에 변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김씨의 경우 작년 4월 샌디에고를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다 국경순찰대에 체포된 이후 심사가 계속 늦어져 혹시 ‘조선족’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적지 않아 애를 태우기도 했지요.
▲한국에 정착했던 2명의 탈북자가 또다시 캐나다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해 온 얘기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대선에 쏠리는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젊은 세대들의 개혁적 사고와 전통 보수세대와의 일대 격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거였으니까요. 한국의 개혁과 시대적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 정서가 힘을 발휘했습니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한인사회의 관심도 컸습니다. 노사모와 이회창 후보 후원회는 LA지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고 몇몇 지역에서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특정후보 지지선언이 이어지는 등 선거기간 중 미주 한인사회는 본국 못지 않은 선거열풍에 휩싸였습니다. 한국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이 미주 한인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대선취재 특파원으로 파견돼 현장을 누비면서 느낀 것은 한국사회의 선거문화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미사어구에 현혹되지 않고 한 표로 말한다는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반미 분위기로 교포사회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지난해 9.11테러 이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월드컵 한·미전, 북한정부에 대한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미군 탱크 여중생 사망사건 등으로 한국 내에서 반미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안 그래도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교포들은 일년 내내 찜찜한 기분을 안고 지내야 했습니다.
-1.5세와 2세들의 한인사회 참여도 크게 늘었습니다. 한인 보좌관들은 타운경찰서 유치, 서울국제공원 재단장, 한국의 날 축제, 도산 안창호 프리웨이 명명 등 굵직한 한인사회 프로젝트 추진과정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또 남가주 총한인대학생회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이민100주년 꽃차제작에 자원봉사자로 자원하는 등 한인사회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정치인들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는 한인 1.5세 2세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젊은이들이 정계로 많이 진출해야 한인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있지요. 좋은 일 뒤에는 항상 우울하게 만드는 슬픈 사건 사고가 있게 마련입니다. 올해는 특히 자살 사건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 한해동안 LA에서 무려 12명의 한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인사회 자살파동’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는데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자살, 졸업을 제때 못했다고 자살, 엄청난 도박 빚 때문에 자살 등등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한인들의 사연은 무지개 빛깔처럼 다양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리커나 마켓을 하는 한인들이 강도의 총칼에 피살되는 사건이 많았는데 올해는 한인들의 잇따른 자살이 살인사건 보다 더 주목받는 한해였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한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살방지를 위해 나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올해 눈에 띄는 사건은 연일 발생하는 경찰과 용의자 사이의 숨막히는 추격전이었습니다. 정초 타인종 갱들과 어울리던 한인 청년이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가 도주차량 후드에 매달려 난동을 피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연말에는 한인타운 한복판에서 총격전으로까지 발전한 추격전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한인 피해자나 가해자는 없었지만 굵직한 사건들이 한인타운에서 많이 발생해 코리아타운=우범지대란 이미지가 더 굳어진 한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2월 초순 점심시간대 8가와 웨스턴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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