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타임즈에는 코소보 난민촌에 관한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에는 전쟁 후 난민들이 겪는 인간 이하의 생활에 대한 참상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화장실, 부엌, 난방시설 마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기거하는 곳이라곤 기껏해야 사방을 흙으로 쌓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곳에 모여 사는 돼지우리 같은 곳이다. 전쟁이 낳은 휴유증이 얼
마나 처참한 가를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12월을 보내면서 이 사진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상황과는 달리 물질이나 생활이 풍부하면서도 의외로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 해에서 가장 즐거운 성탄절, 연말연시를 맞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즐거워하는 반면, 오히려 흥겹고 분주한 가운데 더욱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도 어떤 사람
은 물질이나 영화, 명예 등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은 늘 허전하고 텅 비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 진짜 가진 것이 없어서 연말연시가 되면 특히 마음이 쓸쓸하고 적적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인간에게 있어 특히 연말연시는 고독감을 더 느끼게 만드는 시기이다. 이래도 외롭고, 저래도 외롭다면 도대체 이 고독감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인간이 너무나 허전하고 외로운 경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그 공허감이 메워진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부딪치는 공허감은 타인과 정을 주고받음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내어 한 통화의 전화라도 하게 되면 느끼던 고독감과 허전함이 자기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개인주의 발달로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매정하다 하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이웃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정을 나눈다면 한결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텅 빈 마음을 행복으로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미국과 한국의 노인을 비교해보면 대체로 한국은 50대가 되면 벌써 늙은이 취급을 받는데 미국은 65세가 넘어야 노인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사실 마음으로 따지면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20대 젊은이가 60대 같은 마음을 먹으면 노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60대 노인이라도 20대 마음을 가지면 늙었다고 할 수 없다.
어쨌든 뉴욕에 사는 한국노인들을 보면 유달리 남자들이 외로움을 더 타는 것 같이 보인다.
여자들은 계모임이다, 뭐다 하면서 돈벌 일도 여러 가지로 많지만 남자들의 경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기껏해야 모여서 바둑이나 장기, 게임 등으로 소일하는 것이 고작이다. 뿐만 아니라 슬하에 자녀가 없거나, 또 있어도 마음이 안 맞아서, 아니면 수입의 원천이 없어서 허전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다.
보조금이 정부에서 나온다고 해야 가까스로 지탱할 정도밖에 안돼 이래저래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또 삶의 어려움을 들라치면 미국사회에도 곤란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지난 9.11 사태 이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양로원에 가보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잎새 하나 달린 식으로 허망감과 외로움에 젖어 힘들게 지내는 노
인들이 많다. 그들을 찾아가 대화하고 조그만 선물이라도 주면 껴안고 울면서 ‘원더풀 ‘원더풀’ 하며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교훈을 굳이 들먹이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이 연말연시를 어떤 식으로든 주위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사랑으로 채우면 좋지 않을까. 누구라도 찾아 더 많은 대화와 정을 한번 나눠 보라. 그러면 어느새 텅 빈 마음은 보람감과 만족감으로 뿌듯해질 것이다. 나 보다 못한 사람의 입장에 서서 마
음의 문을 열어 보라. ‘고독이라는 무서운 병’은 자신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계미년 새해에는 사랑을 주고받아 마음을 채우는 한 해가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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