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특징은 예상치 않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이다. 선거 당일 날까지 내년 청와대 안방을 자신이 차지하리라고는 노무현 자신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후광 덕으로 백악관을 차지한 ‘멍청이’ 부시를 오사마 빈 라덴이 미 역사 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만들어 줄 것을 아무도 상상치 못했던 것처럼.
예상 밖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정치뿐이 아니다. 1989년 니케이 지수가 3만 9,000대를 오르내리고 일본이 ‘솟아오르는 태양’으로 세계 경제를 주름잡을 때 13년 동안 일본이 4차례의 불황을 경험하고 니케이 지수가 다우와 같아지리라고 내다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28일 8578로 금년 장을 폐장한 니케이 지수는 지금 20년 전 수준이다. 반면 13년 전 2000대를 헤아리던 다우는 그간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8300대를 유지하고 있다.
핼리 혜성의 도래는 수백 년 후까지 정확히 예견하면서 어째서 인간사는 바로 내일 일도 확실히 알 수 없을까 하는 문제는 지난 100여 년 간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숙제였다. 이에 대한 1차적인 대답은 ‘인간은 외부 힘에 의해 좌우되는 물질과는 달리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인간 역시 물질로 이뤄져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인과율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단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을 뿐’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인간 뿐 아니라 물질도 근본적으로 자유롭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등장과 함께 부터다.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어떤 입자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며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예측불가다. 수소와 산소를 섞으면 물이 나오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수소 원자와 어떤 산소 원자가 반응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들어서는 소립자의 세계뿐만 아니라 ‘복잡한 체계’(complex system)의 예측 불가성에 관한 연구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복잡다단한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에서는 요소 하나 하나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초대형 컴퓨터로도 이를 모두 계산에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이텍이 발달한 지금까지 가을 바람에 지는 낙엽의 진로 하나 정확히 맞추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수십 억 명의 인간이 살아 숨쉬는 세계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의 앞날을 점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가.
‘복잡한 체계’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둑이다. 바둑돌을 쥔 사람은 가로 19줄 세로 19줄 361 곳 중 아무 데나 자유롭게 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가능성 중 판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최선의 착점은 불과 몇 군데뿐이다. 바둑수가 늘수록 상대방의 다음 수를 예측하는 것이 쉬워진다.
경제 또한 마찬가지다. 수많은 투자 대상 중 최고의 수익률을 가져올 종목은 몇 가지뿐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의 투자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최선의 수가 무엇인지를 찾는 프로 기사를 뺨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공을 들였다고 성공의 보장이 없는 것도 둘이 비슷하다. 바둑을 두다 보면 자기는 나름대로 애를 써 좋은 수라고 뒀는데 나중에 보니 개떡수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간이 하는 일에 ‘절대로’와 ‘반드시’가 드문 것은 세계의 근원적인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예측이 똑같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바보에도 급수가 있듯 앞날을 내다보는 눈에도 등급이 있다. 가진 정보의 양과 경험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도 줄어든다. 나뭇잎이 어디로 떨어질 지는 모르지만 갖고 있는 정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예측 방법이 치밀하면 할수록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하루 하루에 만족하는 사는 동물과는 달리 앞을 내다보며 산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빠른 말이 반드시 경주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빠른 말에 건 사람이 결국은 돈을 번다. 어느 말이 빠른 말인지 알아보는 눈을 갖는 새해가 됐으면 한다.
민 경 훈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