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영광교회 신승훈 목사
’주님의 영광교회’ 신승훈목사(47)를 처음 인터뷰한 것이 아마 3년반전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때는 LA에서 막 없어져가는 작은 교회 3개가 합쳐져 새 교회를 이루었다고 미담 식의 기사를 하나 썼는데, 그 화합의 주인공이 신승훈목사였다. 체육인교회, 나성성도교회, 주사랑교회가 합쳐져 태동한 주님의 영광교회는 그때만 해도 교인수가 100여명, 지금처럼 커지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주님의 영광교회’는 그동안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거듭해 창립 3년여만에 출석교인만 2,000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작년에는 미주성산교회와 통합한다고 해서 한동안 화제를 뿌리더니 최근 윌셔가에 큰 건물을 구입해 건축을 성공적으로 진척시키고 있다. 이쯤되면 ‘목에 기브스가 들어갈만도 한데’ 오랜만에 만난 신목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보였다. 똑같이 순수하고, 똑같이 촌스럽고(?) 똑같이 겸손한 모습. 오지에서 선교사 생활을 해본 사람들에게서만 느껴지는 그 순박함이 만난 사람을 편안하고 기분 좋게 해준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은혜를 많이 주시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남보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더 많이 한 것도 아닌데 너무나 사랑해주시네요. 많이 주신 자에게 많이 찾는다고 하셨으니까 많은 사명 감당하라고 하시나 봅니다. 그 모든 감사가 부담이기도 하네요"
신승훈 목사는 요즘 세련된 젊은 목사들답지 않게 ‘은혜’ ‘감사’ ‘할렐루야’ ‘주님의 영광’ 이런 말들을 많이 쓴다. 그러니까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는데, 그런 말들이 진부하고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가식 없이 진짜 가슴에서 우러나서 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은 건축 시작할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 돈 가지면 너무나 할 일 많은데, 나 자신이 설교시간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꼭 건축해야하나 하는 갈등이었죠. 성산교회와 합치려고 했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지만 잘 안됐어요. 새로 산 건물도 처음엔 렌트하려던 것이 얼떨결에 구입으로 이어졌습니다"
신목사의 설명에 의하면 렌트하려고 하자 건물주가 임대조건을 까다롭게 내걸면서 1년치 페이먼트를 한꺼번에 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더니 얼마후 그럼 그러지 말고 거기다 조금만 더 보태서 다운페이하고 그냥 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윌셔와 유니온 인근의 8층 건물(1500 Wilshire Blve. LA)을 910만달러에 구입했고 건축예산은 공사비 포함 1,100만달러로 마무리됐다. 건물의 2개층에서 나오는 테넌트 임대 수입이 적지 않아 실제 경비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패트리어틱 홀의 렌트비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지난 11월1일 이사 들어간 새 건물은 수리중인 내년 3월말 1,200석 본당이 완공될 예정.
"작정헌금 한번 안 하고 건축헌금 강조하지 않았는데도 다운페이 맞춰 끝낸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교회의 결정에 한마디 반대 없이 잘 따라주는 교인들이 정말 감사할 뿐이죠.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목사입니다"
신승훈목사는 한국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26세에 도미, 사업가로 변신해 돈을 많이 벌었다. 리커스토어로부터 시작해, 전자오락실도 경영했고 콜라공장, 마켓, 원아워 포토, 비디오샵등 안 해본 비즈니스가 없을 정도였다. 33세이던 88년에 네트 월수입이 무려 5만달러를 넘었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신나게 돈벌다’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그때까지 예수, 교회, 이런 말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그는, 아니 교회는 나약한 인간이나 다니는 곳이라고 코웃음쳤던 그는 은혜교회 김광신 목사의 설교테입을 듣다가 ‘깨져’ 목회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그의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것이 ‘한 영혼의 소중함’. 내 영혼이 귀중하면 남의 영혼도 귀한 것이라고 깨달은 그는 "한 영혼을 구하려고 목사가 됐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뒤늦은 나이에 탤봇 신학대학원을 나온 그는 졸업한 지 2주만에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로 나가 5년동안 많은 고생을 하며 선교에 헌신했다. 그때 학교 기숙사에 떼어놓아 상처 많은 성장기를 보냈던 딸아이가 지금은 신학교에 입학,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어 자신이 다니던 그 학교에서 가르치겠다고 헌신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울 뿐이라는 그는 앞으로의 목회방향에 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그런 생각은 못해봤어요. 머리도 안 좋고...큰 꿈도 없어서요. 그저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 은혜가 너무 커서 매일 맡겨진 일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말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LA 중심지에 큰 건물을 얻었으니 크리스천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신목사의 계획. 원래 미국에 올 때 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는 케냐 선교시절에도 초등학교 5개, 중고등학교, 대학교, 신학교를 설립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학교를 세우는 일이야말로 지역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그는 한인 학부모들이 믿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유치원과 초중고등 사립학교를 세워볼 생각. 아울러 노인들이 영어도 배우고 신앙도 키울 수 있는 노인학교, 일반인들이 야간에 취업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직업학교도 계획중이고, 장애자선교사역과 히스패닉사역도 제대로 해볼 생각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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