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쪽 ‘채점’ 시작
이라크가 유엔이 결의한 사찰 일정보다 하루 빠른 7일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실태 보고서를 유엔사찰단에 제출함으로써 이라크 사태는 전쟁과 평화를 가름할 수 있는 첫 중대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예상대로 이라크 정부는 보고서에서 “금지된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고 주장한 반면, 미국 영국 등은 내용과 관계없이 이라크 정권 전복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유엔안보리가 보고서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놓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안보리는 사찰단이 보고서를 1차 분석하기 전까지는 보고서 사본을 회원국들에게 배포하는 것을 연기하겠다고 밝혀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방대한 분량, 결론은 “깨끗하다”
호삼 모하메드 아민 이라크 국가사찰위원회 의장은 이날 한스 블릭스 단장이 이끄는 유엔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에 1만 1,807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접수했다. 이 보고서는 안보리가 정한 시한인 8일 뉴욕의 유엔본부와 오스트리아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전달될 예정이다.
3벌의 문건들로 이뤄진 보고서는 핵, 생화학무기, 미사일 관련 부분으로 나눈 것으로 생물무기 부분이 1,334쪽, 화학무기 1,823쪽, 미사일 내용이 6,887쪽이다. 생화학무기 및 미사일 부분 보충자료를 담은 325쪽의 문건과 12개의 CD_롬도 전해졌다.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미국이 제기해 온 대량살상무기 보유 의혹으로부터 투명성을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라크측은 “과거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 국가와 회사까지 공개했다” 고 보고서 내용이 충실했음을 거듭 강조한 뒤 “미국이 최소한의 공평성과 용기를 갖고 있다면 이를 인정해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회의적인 미국, 전쟁준비 가속화
미국은 이날 성명을 통해 “사찰단에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루 일찍 보고서를 제출한 것만으로 전쟁을 피할 수는 없다” 며 강경 기조를 거듭 피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앞서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도 보고서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밝혀 보고서 내용에 관계없이 ‘미국식 해법’ 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보고서에 신뢰감을 두지 않는 것은 이라크가 과거 1990년대 사찰 당시 수차례 거짓보고를 한 전력이 이번에도 되풀이됐을 것이란 의심에서다. 이라크는 91년 걸프전 종전 무렵 세균프로그램에 대한 30쪽 분량의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으나 거짓 보고서로 판명났고, 93년 생물학무기에 대한 최종보고서에서도 보고서 내용과 달리 비밀리에 세균무기 개발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유엔은 결론지었다.
90년대 7년 간에 걸친 사찰에서 수만쪽에 이르는 각종 보고서가 이라크 정부로부터 제출됐으나 유엔을 속이고 사찰활동을 교묘히 방해하려는 술수로 이용했다는 것이 서방측의 판단이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생물학 무기 부분이다. 90년대 사찰 당시 가장 사찰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이라크 정부가 자백하지 않는 한 사찰단이 발견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이라크 과학자들의 망명을 유도, 이들로부터 무기개발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뉴욕 타임스는 7일 보고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6만여 명의 육해공군 병력과 200대에 이르는 전투기들이 중동에 집결해 있으며, 추가병력이 속속 파견돼 전쟁수행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보리 평가 여부가 전쟁 중대 변수
이라크 보고서는 유엔 안보리가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에 따라 유엔 결의가 규정한 ‘중대한 위반(material breach)’ 범주에 포함되는지가 가려진다. 사찰단이 사찰 결과를 최종 보고하게 돼 있는 내년 2월 21일까지의 사찰 일정도 안보리가 이번 이라크 보고서를 통과시킬 때에만 유효하다.
따라서 안보리가 보고서를 통과시킬지 여부, 미국이 독자적으로 보고서를 불인정했을 때 유엔결의에 따른 단독의 군사행동이 가능한지 여부 등에 따라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유엔 안보리가 보고서 배포를 연기한 것은 아랍어로 된 문건을 번역하는 데 따른 기술적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같은 미묘한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란 시각이 중론이다.
황유석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