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냄비가 등장했다. 추수감사절이다. 자선의 종소리가 세밑을 독촉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들리는 종소리다. 세월이란 게 새삼 느껴진다. “감사할 것을 찾아보아라.” 감사의 계절에, 세밑에 들려오는 강단의 설교 제목이다.
나에게 부어진 축복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 보니 감사할 것이 많다. 그런데 불현듯 한 어린이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인가’-.
사실 어린이도 아니다. 열일곱이나 됐으니까. 그런데 어린이 같이 보인다고 했다. 못 먹은 탓이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경애하는 지도자를 신(神)으로 받드는 교육을 받고 자란 때문일까. 그는 말문을 열었다. ‘먹을 것이 없다’고.”
타임지에 소개된 탈북 소년 이야기다. 이 소년이 입을 열었다. 1996년, 그러니까 6년전 기근 때다. 한 이웃이 굶주림 끝에 옥수수를 훔치다 적발됐다. 마지막 날 이웃은 소원인 쌀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는 처형됐다. 그 광경을 소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상황은 그 때보다 더 혹심하다. 소년은 국경을 넘은 것이다.
소년의 꿈은 오직 한가지다. “돈을 벌어 굶주린 부모님들을 배불리 먹게 해드리는 거다. 그렇지만 쌀을 살 수는 없겠지. 너무 비싸니까. 옥수수라도 배불리 먹으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온통 대권 이야기다. 노무현이냐, 정몽준이냐. 준결승은 끝났다. 이젠 결선이다. ‘보수와 혁신의 대결구도’ ‘李로… 盧로… 급속 정계개편’ ‘안정이냐 개혁이냐’-. 신문마다 요란 하다.
“쌀값이 몇십배 뛰었다. 다른 생필품도 마찬가지다. 봉급 인상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못 주고 있다. 불만은 평양시민 사이에도 높아가고 있다. 불만은 엘리트 계층으로도 번지고 있다. 도대체가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기미조차 안보이기 때문이다.” 한국민의 관심이 온통 대선에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 관련돼 나온 보도다.
“최근 평양 당국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죽어 가는 체제가 일으키고 있는 경련과 같은 현상으로 일부에서는 보고 있다.” 개혁을 할수록 살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 누적된 정책실패로 가중되고 있는 불만. 마치 베를린 장벽 붕괴 전의 동독과 비슷한 분위기의 북한 실상과 관련해 나오고 있는 지적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주민의 70%는 외부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세뇌된 로봇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김정일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북한 지도층 내에서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고 군부 내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7월1일 이후 북한은 앞뒤가 안 맞는 정책과 선언으로 일관해 왔다. 경제개혁도, 외교도 모두 실패다. 오판의 연속이다. 북한 권력의 깊은 곳에서 모종의 변화가 발생했다는 기미인가. 분명한 점은 최근의 일련의 사태들이 북한체제 장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 한국의 대선 길목에서 전해지는 북한 관련 뉴스들은 그러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한국 정치에, 남북관계 정립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전조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이는 3김 시대는 따지고 보면 박정희 시대의 연장이라는 데에서 출발한 가설이다. YS와 DJ, 양 김은 박정희 군부통치란 토양에서 성장한 정치 지도자다. 이들 양 김과 박정희는 서로 미워하면서 배웠다. 양 김도 적대적 상호관계를 가지기는 마찬가지다.
지역주의 패거리 정치의 원죄는 박정희에게 있다. 그러나 그 지역주의를 우려먹고 또 우려먹은 게 양 김이다. 이 패거리 정치에 JP도 뒤늦게 끼여들었다. 이름하여 ‘3김 시대’가 열린 것. 그런데 이제 ‘아듀 3김’의 시간이 왔다.
권력유지를 위해 적대적 의존관계를 지속시키기는 박정희와 김일성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말하자면 서로가 미워하면서 필요로 하는 관계였다. 그러므로 한국 정치의 또 다른 거대한 변수, 그건 제4의 김씨였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김씨다.
3김이 퇴장하는 마당에 그러면 김정일은 과연 온존할 것인가. “김정일 체제는 중차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북한 지도층 내부에서 쿠데타 기도가 없으란 보장이 없다.” 북한이 최근 취해온 잇단 조치들이 뭔가 절망의 냄새를 풍기는 데 따라 전문가들이 내린 조심스런 진단이다. 북한 시스템에 균열이 일어왔고 그 틈새는 이제 파열음을 내며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탈북 소년의 후일담은 모른다. 소원대로 돈을 벌어 옥수수 죽으로라도 부모님을 배부르게 해드렸는지. 아니면…. 그렇지만 소년의 절규는 계속 귓가를 맴도는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인가’-. 소리 없는 이 절규가 진정한 감사로 이어질 날은 언제일까.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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