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호주 남쪽 모서리에 위치한 조그만 산골짜기 마을 선밸리는 작가 헤밍웨이가 살던 곳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해마다 미국 내 작가협회 연례회의가 열리는 곳으로, 또 저명인사들의 스키 휴양지로 유명하다.
벼르고 벼르다가 이번 가을에는 꼭 한 번 가보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났다. 유타주의 솔트레익시티에서 자동차로 5시간, 개인용 비행기로 2시간반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유타주는 토양에 소금기가 많아 농사짓는 일은 불가능하고 평지는 일년 내내 누런 잡초와 잔디만 덮여 있다. 그러다 아이다호주에 들어서자 주위에 나무가 보이고 그 사이 사이로 바로 엊그제 화산의 용암이 흘러내린 것처럼 느껴지는 검은 화산석 평지가 있다. 온 들이 검은 화산석으로 덮여 있어 풀 한 포기를 보기가 어렵다.
어느덧 선밸리에서 약 20마일 떨어진 헤일리 마을에 도착해 그곳에 위치한 조그만 비행장으로 갔다. 조그만 산골짜기 마을이란 선입견을 갖고 들어간 비행장에는 놀랍게도 최고급 개인용, 회사용 제트비행기들이 20대 가량 계류하고 있어 이 험준한 산 속에 무슨 별천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대기하던 세쓰나 182기를 점검한 후 약 10분간의 휴식을 취했다. 이륙직전 엔진과 계기점검을 다 마친 후 관제탑에 이륙준비가 완료 됐음을 알렸다. 활주로는 남북으로 설치되었고 약간의 측풍이 있었으나 매우 잔잔한 바람이었고 시계는 거의 완벽한 가을날씨여서 비행하기에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조건이었다.
드디어 이륙허가 통신이 들린다. 복창으로 “이륙허가”라고 외침과 동시에 엔진을 최고 출력시켜 속도를 낸 후 요크를 살짝 당겨 이륙을 시도했다. 비행기는 곧 이륙했지만 그대로 공중으로 솟아오르지 않고 고도를 땅에서 겨우 10피트 정도 유지하고 속도가 120마일 정도 오를 때까지 저공 비행을 계속하다 가파른 각도로 상승비행을 하게 되면 속도계는 점점 줄어들고 반면 고도계는 거의 치솟을 정도로 올라간다. 조종사에겐 너무나도 황홀한 순간이다.
곧 고도가 9,000 피트 정도 올랐을 때 엔진 회전수도 낮추고 날개도 수평비행 자세로 바꾸어 아늑한 순항비행을 한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니 마을은 삼면이 크고 높은 산으로 가려져 있고 남쪽만이 들판으로 열려 있어 하나의 커다란 계곡과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바른 맞은편과 왼쪽, 오른쪽에 산들이 가로막고 있어 계곡 안에서만 회전하며 비행할 수밖에 없다.
산들은 모두 로키산맥의 줄기로 유타의 험준한 산들과 같은 돌산이었으나 계곡의 노랗고 붉은 단풍과 개천이 그림과 같이 펼쳐 있고 그 가운데 점점이 수놓는 것 같은 집들이 보인다. 이제야 왜 이 비행장에 고급 제트비행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짐작이 간다.
9,000 피트 상공에서도 눈에 뜨일 정도의 커다란 저택들이 여기저기 있다. 저것은 영화배우 브룩 쉴즈의 저택, 그 다음 것은 데미 무어의 집, 이쪽에는 브루스 윌리스, 또 그 아랫집은 톰 행크스 등등 마치 유명배우들의 전시장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왜 하필 이렇게도 외딴 산골에 많은 저명인사들이 저택을 짓고 있는가, 또 1940년대에는 도로도 제대로 건설되지 않았을 텐데 왜 헤밍웨이 같은 문호가 이곳에 정착하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비행기를 착륙한 뒤 조종사 라운지 안내원의 설명으로 풀렸다. 1800년대 유니온 퍼시픽 철도회사가 처음으로 철로를 개설할 때 이 계곡의 경관이 너무나 화려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쌓여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천지로 개발한 것이 이 마을의 시초였다. 1900년대에 와서는 게리 쿠퍼, 캐서린 헵번 등의 저명 배우들을 초청하여 별장을 짓게 한 것이 오늘날 저명인사들의 별장이 많은 연유가 되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쿠바, 스페인, 아프리카 등지에도 집이 있었으나 이곳에서 정착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점심때까지는 작품을 집필했고 오후에는 오리와 노루 사냥을 나가 어두워질 때까지 산과 들에서 헤맸고 저녁때는 술과 도박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말년에 문학적인 재능이 무디어지고 쓰는 작품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술과 마약으로 마음을 달래려다 결국 자살의 길을 택한 곳도 이곳이었다.
선밸리의 가을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면 더러워질까 겁이 날 정도로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다. 맑고 잔잔한 바람과 붉은 악마들의 바다와 같은 단풍잎들이, 높이를 잴 수 없이 버티고 서 있는 험악한 산맥의 보호 아래 흐르는 그 맑은 물은 그저 맑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맑은 별천지이다.
이 맑은 가을하늘 아래 선밸리의 그림 같은 자연 속에 파묻힐 수 있다는 즐거움은 나 혼자만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아, 하늘아 푸른 하늘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