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6일자 뉴욕타임스에 서울 특파원 돈 커크 기자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었다.
“토요일 저녁 서울 지하철 안에서였다. 한국인 한 명이 외출 나온 미군 병사에게 다가가 전단을 내밀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전단은 미군 장갑차가 한국 여학생 2명을 치어 죽인 것에 항의하는 내용이었으며 한글로 쓰여져 있었다. 존 머피라는 이 미군 병사는 그 전단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표시하지 않고 못 본 척 했다. 그러자 한국인 남자는 머피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주먹질을 했다. 미군 병사도 대항해 한국 남성을 때렸다.”
“전철 안에 있던 다른 미군 병사 2명이 머피 병사를 보호하려 하자 한국인들이 집단으로 몰려들어 미군들을 구타하기 시작했고 머피는 여러 남자들에게 납치되어 근처에서 열리고 있는 장갑차 희생 여학생 추도 현장에까지 끌려갔다. 그는 거기서 미군은 사과하라는 강압적인 요구를 데모 군중으로 받았으며 얼굴을 사진 찍히고 비디오 촬영까지 당했다. 이날 전철에서 미군을 때린 한국 남성의 이름은 서경원이었으며 그는 전직 국회의원으로 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이 기사를 읽어보면 요즘 일부 한국인들의 대미 정서가 어느 정도 악화돼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 이민 온 한인들에게는 가슴 섬뜩해지는 기사다. 그러나 내가 쇼크 받은 것은 이 NYT 기사가 아니라 얼마전 월드컵 축구 때 히스패닉 TV인 유니비전에서 본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었다.
그 날은 대구에서 한국팀과 미국팀의 경기가 펼쳐졌었다. 경기가 끝난 후 밖에서 어떤 미국 청년이 커다란 성조기를 휘두르며 “USA! USA!”를 외치고 있었다. 이때 그 옆을 지나던 한국 청년 4명이 미국 청년에게 다가가 두들겨 패며 성조기를 빼앗아 찢어버렸다. 그 미국 청년은 머리가 짧은 것으로 미루어 GI 같았다.
과거에는 해외주둔 희망지 1위가 한국이었지만 요즘은 미군들이 한국 근무를 기피한다고 한다. 더욱이 미국 정치인들은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해 심히 유감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헤리티지 재단에서 공부하고 돌아가는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가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엊그제 조지아주 애틀랜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어느 한인 인사가 하는 말이 “의정부에서 사고를 낸 장갑차 운전병이 애틀랜타 지역 애크워스 출신인데 이 지역 미국인들은 재판 결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걱정했다. 현지 미국 신문을 보니까 애크워스 등 코브 카운티 주민들이 마크 워커라는 이 미군 병사의 변호사 비용을 돕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펴고 있는 모양이다.
워커 등 2명의 미군 병사에 대한 재판은 11월21일 열릴 예정이다. 문제는 한국인들의 반미데모 때문에 워커가 전례 없는 중형을 선고받을지 모른다는 조지아 주민들의 의견이다. 워커 돕기 운동본부의 보갠이라는 여성은 “이번 사건은 엄연히 군작전 중 발생한 사고인데도 정치적인 쇼로 해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정치인 등 각계에 공정한 재판을 호소하고 있다. 관계법에 따르면 미군의 작전 진행중 사망피해는 최저 1년, 최고 6년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의 분위기는 지금 미군 병사들이 최고형인 6년을 선고받아도 가만히 안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최저형인 1년을 선고받으면 대규모 반미데모를 초래할 가능성마저 있다. 한편 미군 병사의 고향에서는 1년 징역은 몰라도 6년형이 떨어지면 문제삼겠다는 기색이다. 판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사회가 집단 편견에 사로잡히면 거기에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 사건은 재판 결과에 따라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고 미국인들의 반한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때 미국에 살고 있는 코리안들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를 상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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