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 칼럼
▶ -조선 근대월간지 ‘개벽’에 나타난 하와이동포관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를 수태하고 현재는 과거를 통해 잉태된 태아다. 그리고 그 과거와 현재를 탯줄처럼 연결시켜주는 것이 세월이고 시간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최근 본보기자가 입수해 보도한 조선 근대 월간지 ‘개벽’(23년 6월호)에 게재된 ‘하와이에 사는 육천동포들의 실황’이란 제하의 기사는 8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역사의 숨결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는 당시 ‘개벽’의 기사내용은 조국을 잃고 미주 하와이에 떠나와있는 동포를 애틋해하는 마음이 절절히 배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3년 6월호뿐만 아니라 두달뒤인 8월호에는 하와이에 대한 개략적인 홍보안내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는데 그 기사 내용에는 호놀룰루의 와이키키 인근 공원등지에 놀러와있는 각 민족들에 대한 시각까지 나타나있어 눈길을 끈다.
그중 일부를 보면 "축제일이나 기타 공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혹은 음악도 하고 혹은 무도(춤)도 한다. 기 중에는 설부화용(雪膚花容:피부가 눈같이 희고 얼굴이 꽃처럼 예쁨)과 봉요금발(蜂腰金髮:허리가 벌처럼 잘록하고 머리는 금발인 미녀)의 미인도 있고 옷깃을 단정하게 여민 신사도 있는데 이 세상(와이키키 거리나 공원을 말하는듯)에는 내로라고 큰 코에다 배를 내밀고 돈자랑을 하는 미국인이며 돈만 잘 주면 여하한 모욕을 당하던지 고통을 당하던지 전연 불고하고 노동만 하는 중국인이며 태평양회의 이래로 나도 세계강국의 일위를 점한 나라 사람이라고 제법 짜른(짧은) 키를 큰 척하고 게다짝을 딸딸 끌고 돌아 단이는 일본인이며 수륙 몇만리의 고국을 떠나서 무의무뢰(無依無賴:의지할곳없고 의탁할데 없는 신세)하고 혹은 농장 혹은 공장에서 약간의 임금을 득하야 빈한의 생활을 하면서 고국을 위하야 비분강개(悲憤慷慨:슬프고 분한 마음이 가득차있는 상태)의 루(淚:눈물)를 하(下:흘리는)하는 조선인등의 형형색색의 인종이 있다."고 쓰고 있다.
말 그대로 몇 만리를 떠나와 표박하고 있는 하와이동포에 대한 동족으로서의 가슴 아픈 표현이 가득하다.
개벽은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 창간, 일제가 강권적인 헌병정치를 3.1운동을 계기로 고도의 유화책인 문화정치로 바꿀 때 창간된 월간지다. 그 이전, 또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창조’(創造)와 ‘백조’(白潮)등의 잡지가 있었으나 이는 문예전문지였기 때문에 일반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는 내용을 다룬 본격 종합월간지로는 ‘개벽’이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160면 지면의 3분의 1을 할애해 염상섭,김동인, 현진건등 한국 현대문학사에 기념비적 역할을 한 문인들의 작품이 줄줄이 발표돼 당시 조선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월간지라고 할수있다.
그 ‘개벽’에 당시 하와이 동포들의 생활상을 이토록 자세하고 관심있으면서도 애틋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기사를 보면서 이민백주년을 두달 남짓 앞둔 오늘의 상황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본국과 하와이는 당시처럼 몇날며칠이 걸려야 닿을수 있는 곳이 아니고 비행기로 수시간이면 왔다갔다 할수 있다.
나라의 사정도 달라졌다. 지금 한국은 IT산업 강국에다 무역 규모로 세계 10위권내를 오르내리는 주요국으로 성장했으며 하와이는 물론 미주동포들의 생활도 100년~80년전과는 비교할수 없이 풍요한 생활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80년전 그 아픈 시절을 함께 안타까워하던 그 ‘동포애’의 깊이는 어찌 되었을까.
고국과 타국을 잇는 시간과 거리는 가까워졌으되 마음의 거리는 어떠한가. 본국 국민과 미주동포들 사이에 알게모르게 쳐있는 벽은 차치하고라도 가까이 곁에 있는 동족들끼리도 비방과 폄훼를 마다않는 현 모습들과 비추어볼 때 옛 선조들의 모습은 사뭇 형형한 ‘멋’과 인간미가 느껴진다.
논어의 위정편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나온다. 옛 것을 익혀 그로부터 새로움을 안다는 뜻이다.
오늘날 이민백주년을 맞는 미주 한인사회나 해외 공식이민 1백년사를 맞는 고국이나 함께 느껴야 할 것은 바로 이 평범한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려움속에서도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아끼던 마음, 거기에 21세기 한민족의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닐는지.
김정빈<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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