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경영하는 학습지 서점에서 만나는 한인 학부모들을 보면 우리 커뮤니티에 세대 교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습지와 교육상담을 위해 찾아오던 1세 학부모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대다수가 1.5세와 2세 부모들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70년대 이민 온 어린 세대가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와 90년대 진학 상담했던 고등학생들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나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여름 월드컵 때 스테이플스 센터에 모인 2만여명의 붉은 악마 셔츠의 모습을 보면서 일시적이긴 하나 심히 복잡하고 난감함을 느꼈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갈 “우리 동포 아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 때문이었다.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에 사는 아랍인들은 참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방수사국은 미 전국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의 신상 파악에 나서게 되었고 6,000여명의 아랍계 유학생들은 특별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
미주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어린이들을 만나 물어보면 대개가 자기는 ‘한국인’ 즉 ‘Korean’이라고 대답한다. 필자의 정의로는‘한국인’이라 함은 한반도와 해외에 살고있는 한국 국적 소지자, 즉 한국 여권을 소지한 사람을 말한다. 미주에 살고 있는 영주권자들은 투표권이 없을 뿐 미국 시민과 동등한 의무와 대우를 받고 있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도 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이곳 시민권을 획득한 한민족 출신들은 한국인이 아니고 ‘한인’ 혹은 ‘미국계 한민족’, 즉 ‘Korean American’이라고 부름이 마땅하다. 그리고 이들은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지닌 미국인으로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 공·사립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포 어린이들은 매일 아침 성조기 앞에서 선서를 하며 미국민으로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부모의 나라인 한국, 한국의 스포츠 승리와 응원을 강요하게 되면 혼돈을 가져올 뿐 아무런 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미주에서 발행되는 동포 신문 혹은 방송에서 한민족 이외의 주류사회 사람들을 ‘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접할 때가 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들을 미국 주류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자격과 위치를 포기하고 변두리 인간으로 만들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이 아니고 이 땅의 주인이다.
하늘이 준 기름진 이 땅에서 우리는 자손 대대로 번성해서 한민족의 우수성을 떨치며 살아갈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 우리 1세들의 의무이고 책임인 것이다.
수주 전 한국의 석학들이 와서 강연을 한다고 해서 가본 일이 있다. 한인 커뮤니티의 귀중한 문화행사이니 많은 분들이 오셨거니 하고 갔더니 행사를 주관한 일꾼들은 1.5세, 2세들인데 청중은 소수의 1세들이었다.
그리고 강연은 한국어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앞으로의 행사는 최소한 영어와 한국어 이중언어로 이루어지고 홍보도 1세, 2세 모두를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경비를 들인 귀한 행사에 좀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바야흐로 1세들은 뒤에서 밀어주고 1.5세와 2세들이 앞에 나서서 뛰는 시대임을 깊이 느끼게 한다. 앞으로 우리 동포 언론기관들은 합심하여 새로운 세대들의 필요와 요구를 연구하여 그들을 선도해 나가는 귀한 책무를 다했으면 한다. 그리고 학자와 교육인들은 우리 동포 부모들의 혼돈을 예방하고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을 위해 연구, 발표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워드 권 <전 ABC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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