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프로농구팀은 LA 클리퍼스이다. 클리퍼스 팬이라고 밝히면 많은 이들은 의아해 한다. 왜 레이커스 팬이 아니냐는 표정들이다. 하긴 클리퍼스에는 눈에 띄는 수퍼스타도 없고 성적도 시원치 않은 만년 하위팀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탈과 여성 감독 페니 마샬처럼, 소수이지만 골수인 클리퍼스 팬이다. 이 팀이 지난 1984년 샌디에고에서 LA로 연고를 옮긴 후 지금까지 한결같은 애정을 가져왔다. 클리퍼스는 LA로 온 후 단 두차례 플레이오프에 나갔을 뿐이고 그나마도 1회전에서 탈락했다. 돈은 엄청 많지만 인색하기 짝이 없는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도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이런 2류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간혹 고통스런 일이기까지 하다. 새로운 포인트 가드 안드레 밀러를 영입했지만 올 시즌 전망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클리퍼스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클리퍼스가 ‘언더독’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더독이 좋다. 오버독이 언더독을 이기는 것은 당연하게들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언더독이 오버독을 쓰러뜨렸을 때는 말할 수 없는 스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언더독 클리퍼스는 아주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이런 희열을 맛보게 해주는 팀이다. 특히 레이커스를 꺾었을 때는 스릴이 두배가 된다.
현실 세계에서는 강자가 쓰러지는 일이 흔치 않다. 강한 사람이 거의 예외 없이 이기고 많이 차지한다. 불공평하다고 느끼지만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대리 만족을 찾는다. 드라마 같은 작위적인 설정은 불가능해도 스포츠 역시 그런 역할을 해준다. 약팀이 강팀을 이겼을 때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게 된다. 강팀의 패배와 약팀의 승리는 종종 현실에서의 좌절을 배출시키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독일어에 뿌리를 둔 ‘Schadenfreude’라는 단어 속에는 사람들의 이런 심리가 잘 응축돼 있다. 영어로 ‘damage’를 뜻하는 ‘Schaden’과 기쁨을 의미하는 ‘freude’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굳이 번역하자면 남의 불행이 기쁨이 된다는 뜻 정도가 된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면 웬 비뚤어진 마음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모든 스포츠팬들에게는 이런 심리가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다.
최근 64연승을 질주하던 미국 농구 드림팀이 아르헨티나와 유고슬라비아에 연패를 당했을 때 미국인들은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스포츠팬들의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팀의 몰락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다. 내가 클리퍼스를 고집스레 응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고소함과 스릴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남가주에서 다저스에 눌려 ‘별 볼일 없는 팀’으로 치부되던 애나하임 에인절스가 창단 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일을 저질렀다. 에인절스의 예상치 못한 비상은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진출보다 더 큰 흥분을 안겨준다.
에인절스의 올 시즌 연봉 총액은 6,200만달러로 전체 메이저리그 팀 가운데 딱 중간이다. 시즌 시작 전 전문가들이 예상한 에인절스의 월드시리즈 우승확률은 50대1. 메이저리그 팀이 모두 30개이니 에인절스는 평균 확률에도 못 미치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에인절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극적이다. 와일드카드 팀으로 최강 뉴욕 양키스와 적지에서 1차전을 치러야 했을 때 에인절스의 승리를 예측한 전문가들은 별로 없었다. 양키스는 연봉 총액 1억3,200만달러로 에인절스의 2배가 넘는 우승확률 0순위의 팀. 만약 에인절스가 양키스가 아닌 다른 팀과 상대해 이기고 올라 왔더라도 그 감격이 과연 똑같았을지 의문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는 순환 때문에 세상은 그런 대로 살아갈 만한 것이 아닐까. 그런 재미를 항상 느끼게 해 주는데 바로 스포츠의 묘미가 있다.
월드시리즈가 내일부터 시작된다. ‘만년 2류팀’이었던 에인절스가 마지막 정상까지 힘차게 날개짓 해 올라가기 바란다. 에인절스가 정상에 앉는 순간 나의 애정은 다른 언더독을 찾아 떠나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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