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화의 미래청사진을 보려면 스페인을 이해해야 하고, 스페인을 이해하려면 두개의 그림을 감상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개의 명화가 스페인의 근세사와 국민성을 실감있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고야가 그린 ‘1808년 5월 3일’이라는 그림이다.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에 걸려있는 이 명화는 나폴레옹 군인들이 스페인 민간인들을 총살하는 내용으로 공포에 질린 남자가 두손을 들고 시체들 옆에 서 있는 모습이다. 고야는 이 남자의 눈빛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기막히게 잘 묘사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포르투갈과 전쟁을 하기위해 스페인에게 길을 빌려 달라고 해놓고는 얼굴을 바꾸어 점령해버린 것이다. 스페인 출신인 고야는 프랑스에서 공부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인격을 믿었으나 그가 스페인 왕을 폐위시키고 자기 동생을 왕좌에 앉히자 나폴레옹 타도를 외치며 이 대작을 완성한 것이다. ‘1808 5월 3일’은 마드리드에서 프랑스군이 스페인 민간인을 대학살한 바로 그날이다. 이 사건은 벌거벗은 공작부인 ‘마야’등을 그려온 고야의 생애를 180도 바꾸어 놓았으며 이후부터 그의 그림은 처절하고 어두운 색깔로 바뀐다.
또 하나는 20세기의 대작으로 불리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다. 1936년 스페인 내란에서 프랑코를 지원하는 나치 전투기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에서 무차별 폭격으로 수백명의 남녀노소를 학살하자 울분을 참지못한 피카소가 그 현장을 추상화로 그린 것이다. ‘게르니카’ 때문에 프랑코의 노여움을 사 피카소는 조국인 스페인에 돌아올 수 없었으며 그 후 40년간을 해외에서 방랑해야 했다.
나폴레옹에게 볼모로 잡힌 페르디난드 스페인 왕은 국민저항운동으로 결국 풀려났으나 이때부터 왕권이 약화돼 마침내 지식인 좌파인 공화정권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에 공산화를 우려한 우파 군인세력의 리더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기에 이른 것이 스페인의 근세사다. 좌파인 공화군과 우파인 국민군의 전쟁으로 35만명이 죽었고 50만명의 공화파가 프랑스로 탈출했다. 이것이 스페인 내란이다. 한국의 6.25 전쟁과 똑같은 양상을 띤 민족의 비극이었으며 프랑코가 승리한 후 좌파에 가담한 흔적이 있는 사람은 모두 감옥에 보내 스페인에서는 지금도 좌우사상 논쟁이라면 국민들이 치를 떤다.
그러나 독재자인 프랑코도 인간이기 때문에 1975년 숨을 거둔다. 그는 죽기 몇 년전 “정적들을 용서할 용의가 있는가”라는 기자질문에 “나는 정적이 없다. 모두 죽였으니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프랑코의 망령이 살아날까봐 그의 시신은 얼굴이 땅쪽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식으로 매장하면 영혼이 살아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스페인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후안 칼로스 왕이 다스리고 있는 오늘의 스페인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국민들은 좌우의 사상논쟁에서 벗어나 자유스런 표정이며 활기차고 삶의 의욕에 넘쳐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칼로스 국왕과 그의 가족들이 청렴하여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고 국민소득이 18,000달러로 올라가자 극우파와 극좌파의 주장이 맥을 못쓰고 있다.
히딩크가 한국축구팀 감독을 맡기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있었던 경력에 대해, 그리고 세계 톱랭킹인 브라질의 호나우드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다고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스페인에 뭐가 있지?”라고 가볍게 생각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스페인을 다시 평가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사상을 달리해 소모되는 국민에너지 손실이 어느정도인가를 느끼려면 새로 태어난 스페인을 다녀 올 일이다. 프랑코 독재 36년동안 숨도 못쉬고 있던 미술, 음악, 건축,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꽃을 피워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가 ‘미래 유럽문화의 수도’로 불리는 이유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프랑코 총통이 죽은 1975년부터 스페인의 시간은 그냥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빛을 발하는 보석같은 시간으로 변해 버렸다. 그것은 마치 예수가 탄생하기전 시간과 탄생후의 시간의 의미를 BC와 AD로 구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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