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씨의 얼굴색은 건강하고 밝아 보였다. 30일 황석영씨를 만난 곳은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앞. ‘햇볕도 좋은데 잔디 밭에 앉아서 인터뷰합시다’해서 즉석에서 인터뷰장소가 정해졌다. 노타이에 싱글 차림.
-먼저 하와이에 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미주를 순회한뒤 유럽에도 초청을 받아 가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예.하와이에서 일정을 끝내고 LA에 들렀다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초청을 받아 독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강연과 함께 제 소설의 번역출판등을 논의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황석영’ 하면 실천문학 차원에서 주로 기층민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경향을 견지해왔는데 요즘도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지요?
▲입장에는 변화가 없지요. 하지만 시대의 감각이 변했으니까 거기에 코드를 맞춰야겠지요.저는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을 중시합니다.그러다보니까 그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게 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하지만 이제 양식의 틀이 조금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표어처럼 말하는 것이 있는데 ‘현실주의적인 내용을 아시아적 형식에 담겠다’는 것입니다.
-조금 동떨어진 질문입니다만 본인에게 있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것입니까. 독자들은 ‘장길산’이나 ‘무기의 그늘’, ‘삼포가는 길’등 많은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데요?
▲작가는 지나간 작품을 말하지 않습니다.이미 발표된 것은 제 것이 아니고 독자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발표된 제 작품을 다시 본 것이 한번도 없습니다.지나간 것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다만 가장 고생을 한 기억이 남는 작품이 있다면 ‘장길산’이라고 할수 있습니다.당시는 유신치하였고 검열도 심해 삭제된 부분도 있고 또 자료도 하도 방대했기 때문이지요.
-방북하고 돌아와 감옥까지 갔다 온뒤 한때 그동안 자신이 경도되었던 이데올로기에 대해 반성한다는 선언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지금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경향은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반성이라기보다는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편향이 있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렇지만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균형을 찾기위해 변화합니다.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하도 시대가 살벌해 그에대한 반작용으로 좌로 치우쳤던 것이지만 사회발전의 정도에 따라 오히려 균형있게 몸을 추스리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흔히들 요즘 한국사회를 지식인 사회의 위기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만 정말 위기라고 보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지식인 일반의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위기는 위기입니다. 지식인의 1차적 기능은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적 기능인데 그것을 상실했어요. 사회 전반적으로도 그렇지만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하지 휴머니티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지식인 사회의 위기는 곧 휴머니티의 위기라고 할수 있어요.거기에다가 형식적으로나마 민주화가 되다 보니까 ‘서사 담론’이 사라져버렸어요. 말할 꺼리가 없어졌다고나 할까요.
문학만을 놓고 본다면 30대~40대 독자들이 책을 떠났어요. 요즘 많은 작가들이 스케일 큰 서사 담론보다 신변잡기 사소설을 주로 양산하다보니 외면을 받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긴 합니다.
-한국일보 본국지에 ‘심청’을 1일부터 연재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9세기 한 여성의 몸이 사물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아시아가 시장경제에 어떻게 편입되어가는지를 그릴 생각입니다.그 격동기에 한 여인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해나가는가 과정이 설명되겠지요.
-하와이에는 몇번째 오시는 것인지요. 하와이 동포들에게 간단하게라도 인사말을 전하시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그동안 미국을 여러 차례 왔습니다만 하와이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너무 아름답네요. 공부하러 여기 왔다가는 공부 제대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동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만간 이민1백주년이라던데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잃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흔히 미국사회에 동화되어서 미국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있어서도 나중에 보면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어야 훨씬 힘있는 시민이 될수 있습니다.
-’황석영’ 하면 살아온 삶의 역정 때문에 시대라는 단어가 늘 연상되는데요. 본인은 시대의 수혜자라고 생각하십니까. 피해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시대의 수혜자나 피해자를 넘어서서 작가는 시대와 함께 가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대를 조금 먼저 산다고 할까요.그래야 시대를 변화시킬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김정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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