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파는 진보파를 어리석다고 보고 있다. 진보파는 보수세력을 근본적으로 악(惡)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 정치의 저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원칙이다.” 한 정치 평론가의 말이다.
말하자면 보수쪽은 진보파를 내심 경멸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없지 않은가’ 하는 시각에서다. 진보측은 보수쪽 사람들을 항상 의심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슴’이 결여된 존재로 보아서다.
이 논객은 보수와 진보간의 관계를 이렇게 정립한다. 보수측은 진보계의 ‘선한 의도’는 알고 있어 억지로라도 친절함을 보인다. 보수세력에 대한 진보측의 태도는 그러나 이처럼 관대하지는 않다. 적대적이기 쉽고 때로는 증오감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왜.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상대를 악한 존재로 파악한다는 건 그 자체에 도덕적 판단이 개재됐다는 의미다.
어디까지나 미국 정치 이야기다. 이 원칙이 한국 정치를 읽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까. 그 대답은 ‘예스’이자 ‘노우’인 것 같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는 측면이 한국 정치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보수와 진보를 지나쳐 수구니, 좌익이니 싸우고 있는 게 한국의 정치 현실이므로 대답은 일단 ‘예스’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결국은 ‘노우’가 정답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보다 결정적 키워드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 키워드는 그러면 무엇일까.
보수.진보공방은 말치레에 불과
“…결국 노무현이냐 정몽준이냐가 결정할 핵심인 셈이다. 양측이 워낙 팽팽히 맞서다 보니 요즘엔 선거 막판까지 가보다가 승산이 높은 쪽으로 후보를 단일화 하자는 절충안이 등장해 점점 세를 얻어가는 흐름이다…이는 제3자가 보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논의들이 아닐수 없다. 이런 황당한 주장들이 먹혀들고 있는 게 요즘의 민주당이다.”
한 국내 칼럼의 내용이다. 이 칼럼이 후보 단일화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가 ‘황당하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우선 그 발상이 너무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누가 됐든 승산이 높은 쪽을 찍으라는 요구는 진보의 깃발을 바라보고 민주당을 지지한 사람들을 너무나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노무현과 정몽준 두 사람이 너무 판이한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점도 그렇다. 정몽준은 뭐니뭐니 해도 재벌 2세다. 노무현은 노동운동을 도운 민권변호사 출신이다. 한 사람은 친미주의자라면 다른 한사람은 반미주의자에 가깝다.
한국이라는 정치 풍토에서 이 두사람은 반대 진영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둘 중 무조건 골라잡아 하나 식’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민주당은 당으로서의 정체성은 없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민주당은 심각한 정신 분열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현상을 뒤짚어 보면 진보와 보수의 공방이라는 건 한국 정치에서는 그저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진보니 개혁이니 하며 얼굴을 붉히며 싸우던 것도 결국은 죄다 헛소리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질문을 되새겨보자. 현 한국 정치를 파악하는 데 가장 결정적 키워드는 무엇일까.
“노무현이가 후보가 됐으면 돈을 만들어야지. 자기는 깨끗한 척 가만히 있으면 누가 흙탕물에 손을 대나… 정몽준이는 그래도 돈은 있지 않나.” 한 민주당 당직자의 발언이라고 한다. 돈과 정치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보도다. 단편적 보도지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맹목적 파워추구가 정치본질
“정치는 파워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건 말 장난이고 정치는 미상불 파워를 추구하는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은 무조건 이기고 보아야한다. 과거에는 군(軍)이 그 파워의 기반이었다. 그 다음 차례는 민주화 세력이었다. 민주화가 허무주의로 끝난 마당이니 이번에는 혹시 돈이 모든 걸 결정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 줄을 잘서야….”
한국의 정치판을 읽는 결정적 키워드는 그러면 무엇일까. ‘몽(夢)’자가 그 키워드라고. 글쎄,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세상사는 꿈(夢)이고, 축구가 변수가 되는 정치라는 것 역시 백일몽에 다를 바 없어 하는 말이다.
하기사 꿈이란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다. 대선의 해에 ‘꿈 몽’자 보다 더 적합한 정치의 키워드는 없지 않을까.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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