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떠났습니다. 13주 후에 돌아온다는 기약만을 남긴 채, 나의 사랑하는 아들은 그리 멀지는 않지만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아들이 떠난 후에야 그 아들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고 자기가 그 아들을 너무도 사랑했음을 아버지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연약하고 섬세하면서도 작은 일에 화 잘내고 어리광을 부리다가도 할아버지처럼 노랭이 짓하고, 아빠랑 씨름하면서 장난치다가도 엄마 품에 안겨서 재워달라고 보채던 아들이 씩씩하고 늠름한 해병대원이 되겠다고 지원해서 훈련받으러 떠났습니다.
아들이 남기고 간 빈자리를 통해서 아버지는 그때까지 잊고있던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고 더욱 많이 울었습니다.
다니던 학교에 휴학계 내고 수없이 만류하시던 부모님을 뒤로하고 팔각모와 빨간 명찰이 멋있다고 해병대에 지원해서 진해로 가는 입영열차에 오르던 77년 11월 9일날, 근 25년 전의 일이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입대 첫날 첫 시간부터 오리걸음으로 들어가던 진해 6정문과 파리가 들끓던 짬밥통과 시궁창같이 더러운 드럼통 물에 한번 넣었다가 꺼내서 밥 받아먹던 판과 푸쉬업(push up), 토끼뜀, 꼴아 박아, 한강철교 등등 각양각색의 기합이 생각났습니다. 또 월미도 UDU에 지원해서 근무 나갔던 혈기 넘치는 젊은 날의 그 시절 일들이 활동사진처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자식이 잘못될까봐 늘 노심초사하시고 제대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날들을 근심걱정으로 지새우시던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특별히 진해로 포항으로 또다시 진해로 그리고 또 다른 곳에 있던 부대로 수없이 면회를 오시면서 걱정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던 나의 아버지. 그분이 계셨기에 그 흔한 사고 한번 없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도 않고 장기하사관으로 말뚝박으라는 온갖 협박과 회유를 뒤로하고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나의 아들이 남기고 간 빈자리를 통해서 이제야 비로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특히 아버지의 지극하고, 은근하고, 없는 듯이 있고, 변하지 않고, 무조건적이고, 바라는 것 없이 다 주고, 덕보고자 하지 않고, 자식이 잘 되기만을 빌고 바라는, 일방적인 사랑에 이제야 눈을 뜨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통해 그동안 잊었던 내 열등감의 열매인 젊은 날의 방황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아련히 내 가슴을 파고들고, 나의 아픔과 고통 때문에 내 마음 한구석에 퇴색해 있던 내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내 아들에 대한 아프고도 시린 사랑이 그리움과 후회로 그 빈자리를 메우는구나.
네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통해 내가 아들을 사랑했음을 새롭게 확인했고, 내 아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 나를 향한 내 아버지의 사랑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으며, 내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너를 향한 이 아버지의 사랑을 새록새록 키워간단다. 아들아! 그동안에 아버지가 네게 주었던 상처들마저도 극복하고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이제 돌아오면 “왜 그렇게 지금까지 나를 구박했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을 만큼 씩씩해지기 바란다. 여기 있는 이 아버지도 네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너에 대한 그리움으로 메우면서 너에 대한 사랑을 하루하루 키워 가련다.
아들아! 네가 떠나던 날 아침에 아빠 몰래 일찍 일어나서 사다가 준 아빠가 좋아하는 손바닥 도넛을 아빠는 매일매일 아침마다 마음으로 먹는단다.
크리스찬 김/아태상담치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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