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한해 동안 미국은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전례 없는 혼돈과 조정기를 거쳤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기정 사실화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이의 정당성 및 향후 경기 향방에 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공격의 주된 외견상 이유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점차 미국 및 중동 지역의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과 9.11 테러에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강한 심증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제거 및 체제 전복을 통한 친미체제의 수립을 이번 전략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의 공격력이 성숙단계에 이르기 전에 ‘선제 공격’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미국의 지속적 경기 침체 및 고실업 등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긴박한 이슈들을 뒤로하고 ‘사담 죽이기’에 정책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현명치 않다. 무엇보다도 이라크가 국제 테러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은 증거 불충분이다. 또 비록 핵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이라크가 향후 미국에 치명적 위협이 된다는 미 정부의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핵무기 보유가 곧 주변국가들의 점령 또는 정책 강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지난 91년 걸프전의 경우 미국의 견제로 이라크가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에 생화학 공격을 하지는 못했다. 후세인이 이제 와서 초강국 미국의 가공할 보복을 유발할 자멸적 게임을 할 정도로 비이성적이라고 가정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의회 및 국내외 여론을 충분히 등에 업지 못할 경우 글로벌 수준에서의 대 테러 전선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라크의 존재가 글로벌 위협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정작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 우방으로부터 외교적 지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도 입장이 부정적이다. 또한 보수 공화 내부로부터의 정책 비난도 대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여전히 중동 산유국들의 이슬람 정서를 무시하고 있다. 미국의 공격이 친 이스라엘 정책의 일환으로 또는 이슬람 전체를 테러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으로 비추어질 경우 가뜩이나 민감한 중동 지역의 세력균형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우디 등의 아랍 연맹은 최근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 의사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특히 사우디가 최근 250억달러 상당의 천연개스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서방 정유사들의 참여기회를 전면 금지했다는 사실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라크의 실제 위협은 사담의 오일 통제 가능성이다. 가능성이 작지만 후세인이 전세계 오일 생산의 40%, 저장량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동 지역을 장악할 경우 미국 및 글로벌 경제는 당연히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아무튼 대 이라크전은 단기적으로 유가 인상 및 이미 구겨진 소비자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고 유가는 기업 및 소비자들에게 각종 비용 부담을 가중시킨다. 실제로 지난 91년 걸프전의 경우 고 유가는 당시 글로벌 경기 침체에 기여했다.
종합하면 미정부는 먼저 가능한 외교적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 최소한 다국적 협조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걸프전은 유엔안보리의 이라크 군사력 제재 결정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9.11 테러가 부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미국의 결속을 강화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취약한 정통성 및 경기 침체로 국민적 지지 기반을 못 찾고 있던 부시에게 9.11 사태는 그의 정통성 강화에 더 없는 기회였다. 이번 전쟁도 간단히 승부가 난다면 부시는 가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다시 인기를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체제 전복이라는 전쟁목표는 지상군 투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많다.
끝으로, 기업가 출신 부시는 아직 설득력 있는 경기회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외교 문제에 있어 부시는 더욱 초보자 티가 난다. 그는 지나치게 흑백 단순논리를 선호한다. 국제 관계는 골목대장 놀이가 아니다. 무리한 정치수로 핵심적 현안을 피해서는 안 된다.
정수익 퍼스트 아메리카 한국담당 부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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