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에는 여러 가지 징크스가 따라 다닌다. 중간선거의 해에도 묘한 징크스가 자리잡고 있다. 첫 임기 중간선거의 해에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악운이 따른다는 게 그 징크스다.
8년전, 그러니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고 처음 중간선거를 맞은 해다. 그는 계속 돌출하는 정치적 악재로 곤욕을 치렀다. 선거공약으로 내건 의료시스템 정비 법제화 노력이 대실패로 끝난 게 그 시발이다. 결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역사적인 패배’로 그 악운은 이어졌다.
그 보다 4년전 아버지 부시도, 또 20년전 레이건도 마찬가지 상황을 맞았다. 카터, 닉슨, 존슨도 모두 첫 임기 중간선거 해에 정치적 악운에 허덕였다. 특히 해외에 대규모 파병을 한 대통령의 경우 더 많은 악재에 시달렸다. 처음 파병 때 미국민은 대통령을 전폭 지지한다. 그러나 6개월 정도 지나면 지지율은 떨어지면서 의혹과 경계의 눈초리로 변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 취임 후 첫 번째 맞는 중간선거의 해다. 부시 역시 징크스에 시달릴까.
9.11테러 이후 부시의 인기는 한껏 높았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자 인기는 절정에 올랐다. 그 성가는 그러나 올 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때 90%선으로 치솟았던 지지율은 7월 들어 65% 안팎으로 떨어졌다. 8월에는 50%를 웃돌았다.
엔론 사태 등 거대 기업의 잇단 회계부정 사건이 터진다. 행정부 고위층 연루설이 파다하다. 미국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국제사회 여론도 좋지 않다. 부시 행정부가 너무 튄다는 질타다.
올 들어서는 정치적 악재의 연속이다. 정치적 악운의 징크스가 연상된다. 그러면 올 중간선거에서 부시의 공화당은 참패를 한다는 것인가. 아직은 성급한 결론 같다.
중간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투표의 성격이 짙다. 선거의 주 이슈는 국내정책으로 국한되는 경향이다. 이번 중간선거의 아젠다는 그러나 여전히 테러로 보아야 한다. 해외정책이 이슈인 셈이다. 그러므로 공화당 참패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전망은 그렇다고 치고 중간선거와 관련해 묘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부시 백악관은 올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백악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공화당 승리를 위해 부시가 사상 최대의 정치 헌금을 끌어 모으고 있는 마당에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클린턴이 ‘깅그리치 혁명’으로 불린 공화당 압승의 중간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한 전례를 보면 상당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1994년 중간선거 결과 클린턴의 민주당은 수십년만에 가장 참혹한 패배를 겪었다. 그 참담한 패배를 기회로 바꾼 사람이 딕 모리스다. 이 정치의 달인은 클린턴에게 ‘깅그리치 공화당’의 극우파와 민주당내 진보파 사이에서 중도파 이미지의 대통령으로 처신할 것을 제언했다.
그 제언에는 한가지 무서운 노림수가 숨어 있었다. 의회의 파당적 대립을 주로 ‘공화당 우파’ 독주의 결과로 부각시켜 뒤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의회가 지게 한다는 책략이다.
이 전술은 맞아 떨어졌다.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한 반면 한 때의 승리에 의기양양하던 깅그리치는 강공 일변도의 자충수에 몰려 자멸했다.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올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 다수 의회가 탄생할 때 이는 부시에게 오히려 득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지나친 파당적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운 수 있어 대통령으로서 부시의 운신의 폭이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부시를 정치적으로 보호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중간선거 패배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진영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돼 결과적으로는 부시에게 약이 된다는 논리다. 또 자체 경쟁력을 높여 2004년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같은 공화당이라고 해도 백악관과 의회의 정치적 이해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암시다.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파당정치를 둘러싼 정치적 책략에 있는 게 아니다. ‘져주면서 이기는 정치’가 포인트다. 부분적인 전투, 작은 승리에만 매달리지 않고 대국을 보는 큰 정치다. 바둑으로 말하면 ‘후수(後手)의 선수(先手)’ 이치라고 할까.
“저단자 시절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큰 곳을 빼앗기기 싫어 언제나 선수가 되는 곳에만 두려고 했다. 고수는 다르다. 후수가 되는 곳인데도 착점을 한다. 당장은 눈에 띄지 않지만 머지않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요소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후수의 선수’는 고수만이 둘 수 있다.” 조치훈의 자서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후수의 선수’를 아는 정치인이 그런데 어디 있어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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