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 아들을 둔 친구와 라스베가스를 간 적이 있다. 엄마 친구들과 한 호텔을 쓰라고 잡아주고 자신은 친구들과 다른 호텔을 잡은 친구 아들은 밤늦게 자기 호텔로 돌아가면서 엄마에게 큰소리로 당부했다. "엄마! 케이 타운에 가지 마!"
"아니 라스베가스에서 웬 코리아타운?"이라고 반문하자 친구는 "한인타운 유흥가에 접근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말을 이제는 컸다고 엄마한테 써먹는 거지 뭐"라고 웃었다.
한인타운 가까이 살던 그 친구는 아들이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부터 술집, 나이트클럽 투성이인 한인타운에는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젠 거꾸로 돼서 엄마가 늦을라치면 아들이 번번이 "케이 타운에는 안 가는 거지?"한다고 했다.
어쩐지 익숙했던 것은 그 말을 내자신도 엄청나게 사용했던 때문이었다. 한인타운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도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한인타운을 들락거렸다.
그때부터 아이들 입에서는 ‘케이 타운’이 많이 튀어나왔다. 코리아타운을 케이 타운이라고 하는 것도 그때 알았다. 케이 타운에 갔다하면 새벽에나 돌아왔고 술과 담배냄새도 심심찮게 풍겼다. 다른 인종의 친구들과도 거기서 자주 만나고 그들이 ‘물 좋은(?)’ 한국 술집이나 카페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말도 들었다.
음주운전도 무섭고 교통사고도 걱정되고 젊은 혈기에 휩쓸릴 수 있는 폭력 같은 사건도 겁이 나서 "코리아타운에는 꼭 가야 하니?"하고 애원도 했다. 무엇보다 유흥업소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떼지어 흐느적대는 10대 남녀 청소년 무리가 연상이 되어서였다. 그들의 모습은 항상 위험한 사고 속으로 뛰어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한인타운의 직장을 다니면서, 한인타운 밤거리를 안심하고 다녀도 보고, 무엇보다 이민 한인들에게 편리한 모든 것을 갖춘 지역이 있음에 크게 감사하면서도 특히 청소년들의 ‘코리아 타운행’은 언제나 불안했다. 한인타운으로 다시 이사 나온 현재도 다 큰 아이들이 주말이나 밤에 외출하면서 목적지가 타운 내가 아니라면 은근히 안심을 한다.
그래서 코리아타운에 산다면 "미국 온지가 얼만데 아직도 한인타운을 못 벗어나…"란 비아냥 어린 표정을 짓는 사람이나 "심심하면 헬리콥터 뜨고 총소리 나는 타운을 언제나 벗어나나…"라고 자조하는 네이티브(?) 코리아타운인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한국의 지인들조차 ‘코리아타운은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알고 있다. 한인타운의 좋은 면을 아무리 부각시켜도 ‘술집이나 매춘, 사기가 횡행하는 곳’이란 그들의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코리아타운은 누구나 알다시피 갓 이민한 한인들의 문화충격 완충지대로나 노인들에게는 천국 같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영어 한마디 안 쓰고도 마치 내 나라처럼 활보하는 곳이 LA의 한인타운말고 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케이 타운’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유흥업소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뿐 아니라 미국 전체를 봐서도 LA 한인타운만큼 특정구역 안에 유흥업소들이 포화상태로 밀집된 곳은 전무후무하다고 한다.
술이 있는 곳에는 마약, 탈세, 폭력, 윤락, 불법영업 등이 자생하니 걷기는커녕 차 타고도 지나가기 두렵게 됐다. 게다가 이제는 중국계, 베트남계나 질 나쁜 외곽 갱들도 ‘술과 여자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원스탑 패러다이스’라며 마구 몰려들고 있다. 패싸움, 총격사건이 더욱 빈번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가로 이름 날렸던 윌셔 거리를 한인들이 장악해서 자랑스럽더니 어느 사이에 술집, 나이트클럽, 노래방, 피시방, 카페들이 가득한 거리로 변모되고 있다. 사건이나 범죄가 많이 발생하니 LAPD도 "한인타운 순찰을 늘려야겠다"고 했다.
며칠 전에 올드 패사디나 식당에 갔다가 밤늦게까지 가족 단위로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식당과 서점, 옷가게, 극장들이 한꺼번에 섞여 있는 거리에서는 어릿광대가 풍선을 불고 맹인 연주자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색서폰을 불었다. 한쪽 널찍한 공간에서는 부모 손에 이끌려 온 아기들이 밴드의 음악연주에 따라 제멋대로 춤추며 천사 같은 웃음소리를 날리고 있었다.
우리의 케이 타운도 유모차를 끌고 밤에도 나다닐 수 있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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