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가 열리기 전 이주일씨를 만났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만난 것이 아니라 5월 중순 경기도 분당에 있는 그의 집으로 병 문안 갔었다. 이주일씨의 병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만날 생각이 있으면 지금이 최적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그는 한때 한국 연예인들 중 소득세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어 집이 으리으리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대신 뜰이 굉장히 넓고 꽃과 나무가 많았으며 입구에는 초가집도 한 채 있었다. "은퇴하면 시골에 초가집 짓고 호박과 참외 키우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식의 전형적인 전원주택이었다. 이런저런 흘러간 이야기를 하다가 "도대체 담배를 얼마나 피웠느냐"고 묻자 하루 두갑 피웠다고 대답했다.
"제가 암 걸린 것은 담배 피운 데다 폭음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7대 독자인 아들이 91년 교통사고로 죽은 후 나는 살 의욕을 잃었어요. 그래서 매일 폭음했고 거기에서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암세포가 자란 겁니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표정이 어땠을까. 나는 그가 그 엄청난 쇼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가 궁금해서 이렇게 물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골프를 치는데 이상하게 기침이 많이 나고 기운이 없어요. 나중에는 걷기에도 숨이 차고 들어 눕고만 싶고요. 그래서 병원을 찾았죠."
"의사가 폐암이라고 말했을 때 무슨 생각했었습니까?"
"젊은 의사들 너무 솔직해 좀 문제가 있습디다. 입원 일주일째 되던 날인데 담당의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정리할 것 있으면 정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폐암 말기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못 넘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때가 지난해 10월이었습니다."
"충격이 컸겠네요."
"우리 집사람이 그 소리 듣고 쓰러졌습니다. 내가 소리 질렀죠. ‘의사고 뭐고 당장 이 방에서 나가. 왜 그렇게 예의가 없어. 어떻게 그런 소리를 그런 식으로 말할 수가 있어!’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의사를 바꿨습니까."
"지금은 친하게 지냅니다. 생각해보니 결국 맞아야 할 매예요. 그런데 난 크리스마스를 넘겼거든요. 요즘은 의사보고 내가 이렇게 놀립니다. ‘12월 못 넘긴다고 했는데 지금 5월이야. 뭐 할말 없어?’ 하고 말입니다."
코미디계의 황제로 불리는 이주일도 암 선언 앞에서는 웃지 못했다. 웃기지도 못했다. 죽음의 그림자를 본 순간 그는 너무나 억울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한참 후라고 한다.
이주일은 연예계에서 7전8기하여 성공한 스타다. 내내 고생하다가 80년 TBC-TV의 어떤 프로그램에서 실수하여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되어 출연 2주일만에 인기정상에 올랐다. 2주일만에 출세했다 하여 그의 예명을 ‘이주일’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과 너무 닮은 것이 죄가 되어 TV 출연을 금지 당해 한때 나이트클럽으로 전전해야만 했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은퇴 후 연희동 자택으로 나를 부르더니 ‘못생겨서 죄송할 것 없어. 힘내’ 하면서 격려해 주시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들 잃은 직후였죠"라면서 사람의 인연은 정말 모를 일이라고 했다.
그는 한때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본명인 정주일을 썼다. 그러나 국회의원 정주일은 세상에서 별로 알아주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정치인으로 여기지 않고 ‘코미디언 이주일’로 대우했다. ‘정주일’과 ‘이주일’의 두 세계를 오가며 고민하다 결국 ‘이주일’의 세계로 돌아왔다. ‘정주일’의 세계에서는 자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속상해 하고, 슬퍼하고, 과로하고, 폭음하고, 잠 못 이루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암에 걸리기 쉽다고 그는 말했다. 암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체내에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병 위문을 마치고 나오는데 등뒤에서 "미주 동포들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하세요"라며 웃었다.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저 세상에서도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며 많은 영혼들을 웃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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