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 100주년을 앞두고 해외에서 가장 많은 한인이 모여 사는 남가주에서 태미 정 류씨가 첫 한인 여성판사로 임명됐다. 인종과 성의 장벽을 깨고 전통적으로 백인 남성의 활동 무대인 법조계에 진출한 태미 정 류 판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민경훈 편집위원>
-먼저 가주에서 첫 한인 여성 판사로 임명된 데 축하드립니다. 우선 언제부터 판사 업무를 맡게 되며 무슨 일을 하게 됩니까.
▲다음달 9일부터 판사로 근무하게 됩니다. 근무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다운타운이나 샌피드로 집 근처의 수피리어 법원에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하는 일은 대부분 신참 판사가 그렇듯이 교통이나 인정신문을 다룰 것 같습니다.
-가주 검찰에서 14년 간 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검찰은 여성 직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검사 직을 택하게 됐습니까.
▲사기업보다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싶었고 형사보다는 민사 분야를 원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주 검찰을 택했습니다. 88년 검사로 첫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남녀 통틀어 한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지금은 매년 한인 변호사 수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단지 사설 로펌에만 들어가지 말고 검찰 등 공공기관에 많이 진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최근 주와 LA시, LA 카운티 등 각 검찰에 한인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주 검찰 LA 사무소에만 한인이 10여명에 달합니다. 매년 한인 변호사 1~200명씩 늘고 있어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되리라 봅니다.
-공직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했는데 검찰이 되기는 쉽습니까.
▲전에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뽑히는 수도 있었는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봉급 외에 장점이 많다는 게 점차 알려진 탓이죠. 요즘은 자리가 하나 나면 200~300명이 지원하며 그 중 5명 정도를 인터뷰해 한 명을 뽑습니다.
-판사가 되는 절차는 어떻습니까.
▲우선 검찰 경력 10년이 넘어야 합니다. 판사 임명 신청을 하면 주지사가 지원자의 자질과 업적 등을 심사한 후 지원자를 아는 사람들에게 200여 통의 평가서를 보내 그 사람 됨됨이를 살핍니다. 그 후 다시 인터뷰를 해 최종 임명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판사가 되려는 사람은 평소에 쓸 데 없는 미움을 사면 안됩니다(웃음).
-검찰 등 공직은 로펌에 들어가는 것에 비해 보수가 적다고 알고 있습니다. 직접 일해본 경험에 비춰 보면 어떻습니까.
▲돈으로 따지면 그렇지만 공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고 처음부터 큰 사건을 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반 법률 회사에서는 상당 기간 작은 케이스를 처리하며 사무직에 매여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백인 남성이 다수인 검찰 사회에서 한인 여성으로 일하며 어려운 일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동안 어떤 일을 했으며 직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말씀해 주시죠.
▲보건 의료, 웰페어, 교육 문제에 다툼이 있을 때 주 정부를 대표하는 일을 했습니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능력이 있으면 대우받는 것이 미국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에 나가 일하는 것이 즐거웠으며 직장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민주당원으로도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1992년 4·29 폭동이 난 후부터입니다. 그 때 한인 민주당 협회(KADA)와 공화당 협회(KARA)가 동시에 발족됐습니다. 저는 민주당 협회의 창립 멤버이기도 합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치적인 발언권이 없이는 미국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민주당을 택한 것은 그쪽이 좀더 소수계 문제와 가난한 사람 등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정치 활동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판사는 한번 임명되면 종신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생 법조계에 몸담을 계획인가요.
▲그렇습니다. 6년마다 선거를 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도전자가 없으면 자동 유임됩니다. 능력을 인정받으면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올라갈 수 있지요. 몇 년 전 두순자 사건을 판결한 조이스 칼린스 판사가 이 판결 때문에 선거에서 도전을 받고 겨우 이기기는 했으나 판사 직을 그만 둔 일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한인 커뮤니티는 지난 20~30년 동안 빠른 성장을 했으나 문제점도 많습니다. 한인 커뮤니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며 전망은 어떤 지 말씀해 주시죠.
▲한인 사회의 비약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 전체로 보면 우리는 소수 중 소수입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려면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중국, 베트남, 일본 커뮤니티와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젊은 세대 가운데 이런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한인들은 큰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한인 변호사협회만 봐도 중국이나 일본 변호사 협회보다 빠른 속도로 크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칭찬을 넘어 은근히 질시의 눈초리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있었던 한인 민주당 협회 모임에 주지사와 주 상 하원 의원, LA 시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그만큼 한인 사회의 위상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울타리를 치고 한인끼리만 살려는 자세를 버리고 타인종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보인다면 못 할 일이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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