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먼길을 돌아 왔습니다. 지금쯤 여름을 준비를 하시려고 그 산길을 떠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보리 섞은 밥 한 주먹 뭉쳐 만들어 소금물 발라 허리춤에 끼고 그 모퉁이 길 돌아서 재를 넘고 나서 밤나무 아래 앉아 강바람에 허리춤에 밥 한 덩이 먹고 이마에 흐르는 땀 식히며 다시 걸어가던 그 강촌길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날이 모레이고 그 산소에 가보지 못한 세월 30년이나 됐습니다. 그 산에 심어 놓은 나무는 얼마나 자랐는지 모르고, 그 주변에 심어 놓은 코스모스는 가을이면 하늘하늘 피고 있는지 모르고, 아버지 이름이나 제대로 붙어 있는지,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 그렇지요. 그 논둑 길 질러갈 수 있는데도 논둑 길로 만 가시는 아버지였습니다. 나는 벼 베고 난 논에 살얼음 밟고 가면서 뽀드득 소리에 마음을 깨고 걸었지요. 아버지 한번도 제대로 눈길 한번 안 주어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아버지 눈길을 모으려고 촐랑거리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책을 펴놓고 읽고 있는 아버지이었습니다.
대쪽같은 아버지 다른 이들은 다 피난을 갔지만 아버지는 그 학교에 남아서 학교를 돌보고 있었지요. 저 사람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분이라 하여 동네에서 보호하여 피난 안 가고 인민군 있는 그 학교에 남아 있던 아버지이지요. 하루도 빼어 놓지 않고 일기를 쓰시던 아버지였습니다.
그 일기장엔 오늘은 그놈들이 돼지를 몇 마리 잡아갔다. 또 오늘은 소를 잡아갔다 쓰신 아버지인데 그 일기장 인민군에게 들키어 총 뿌리 옆구리에 들이대며 죽인다고 하여 아버지는 사색이 되어 사시나무 떨듯 하는 걸 보신 어머니 언니 무릎 꿇고 앉아 살려달라 빌고 또 빌어 3일 말미를 받고 죽음을 면했었지요.
그들은 3일 후에 데리러 온다는 소리에 그 밤으로 험준한 덕유산 넘어 부산으로 가고 우리만 남았었지요. 우리 식구들은 무주구천동에 갇히고 그 해 겨울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요. 죽기 전에 천지신명에게 빌며 살려달라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빌었지요.
아버지 그거 아시는지요. 수복하는 군인들 대열 속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군인 옆에 서 있는 아버지는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용감하고 기운 센 사람인줄 몰랐지요. 그때는 우리 아버지가 제일 크고 제일 용감한 사람이라고 믿었지요. 그 이야기 두고두고 자주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잊지 말라 합니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줄거리까지 다 외고 있지요.
아버지날이 올 때마다 심어 주고 싶은 육이오 입니다. 할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렇게 겪은 육이오 잊지 말아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런 때가 있었어" "어머니 그만 하세요" 언젠가 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역사책에 남겨 놓고 말해 주고 싶어요. 그 절벽 같은 아픔을 말하여 주고 싶어요.
왜 그렇게 슬픔을 당하였는가를… 한 자손, 한 민족, 한 나라인데 아직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보고싶은 사람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여 주고 있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못보고 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져 살고,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형제가 서로 마주보며 싸우고,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는 것을 기록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신지 35년이 되었는데도 통일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탈북의 소리가 자주 들려오는 것을 보면 동독이 무너지듯 곧 무너질 것이지 하고 소망을 가져 봅니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것은 정직하게 살라 하셨는데 그렇게 살려고 하였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지만 그 평가는 아이들이 해 줄 것이지요.
아버지 월드컵 축구를 우리나라에 유치를 하고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폴란드를 이겼고, 미국과는 무승부였고, 포르투갈을 이겨서 꿈에도 그리던 4강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리마다 붉은 악마의 옷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북녘 땅에 밀고 나가 평양에 붉은 기를 꽂고 싶네요. 우리나라가 많이 변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부강한 나라 흉내를 내고 있어요.
잘 살고 있어요. 아버지 보릿고개란 말은 아버지가 계실 적에 쓰던 말이고 지금은 그런 낱말을 아이들은 몰라요. 농번기 소리도 모를 거예요. 아버지 좁쌀 죽 쑤어 먹을 때가 아니고 흰쌀 밥 대신 보리 밥 건강식으로 먹으라고 권하고 있어요. 아버지 올 추석에 한번 다녀가고 싶은데, 그 시간 그 산이 여전히 산하를 지키고 있겠지요. 아버지 내년에 다시 찾아뵈러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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