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의 8.8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완패는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었다.
8.8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이미 정당이 아니었다.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하루이틀전에 ‘신당창당’이니 ‘분당’이니 ‘반노 친노’ 해가면서 당 지도부가 공공연히 떠들어대고 있는데 그런 아수라장 정당에게 표를 몰아줄 유권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본국의 많은 언론들이 이번 재보선 참패 결과를 두고 ‘DJ 부패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의 연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민주당이 ‘스스로 정당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이런 완패가 초래되었다고 보여진다.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상 최악의 투표율은 ‘정당이기를 포기한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투표권 포기’의 당연스런 외연(外延)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8.8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신당 창당’의 물결은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저 당의 간판이나 바꿔 단다고 해서 무엇인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사는 매번 ‘순간을 모면하는’ 이합집산의 정당사로 점철되어 왔다.
지금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당의 이름만 다르지 그 속의 구성원들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출신지역이 조금 다르다면 다를까. 그것도 경상도 전라도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쉬우니까 정당의 우산속에 들어가 있던 것이지 정치적 이념이나 뜻을 같이 해서 들어가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멀리 떨어진 이 하와이에서 지금 본국 정치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월드컵뒤 세계가 한국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본인들 스스로가 ‘국민경선제’는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혁명이니 뭐니 해가면서 자화자찬하며 대통령 후보를 뽑아놓고 이제 여론조사 수치가 상대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후보를 사퇴하라고 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회창후보도 노무현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이상 뒤지고 있을 때 후보를 사퇴했어야 하며 고어나 부시도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다면 어느 한쪽은 사퇴를 했어야 한다. 도대체 승부를 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 민주당이 참패를 한 것은 ‘비전없는 정당, 리더도 없는 정당, 원칙도 소신도 없는 정당에다 의리도 없는 정당’으로 유권자들에게 낙인찍혔기 때문이며 완전히 환골탈태하지 않고서는 20%의 지지도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DJ 집권 5년동안의 뒤죽박죽 무정체성에다 역대 정권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각종 부패, 거기에다 지난 5년간 한국사회에서의 가장 큰 해악인 ‘소신이 헐값에 땅에 내팽겨쳐졌기 때문에’ 민주당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후보를 띄웠던 것은 무엇인가. 그가 ‘소신이 있는 정치인’이라고 유권자들(주로 386세대)이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부산에 고집스럽게 출마하며 두세번씩 선거에 떨어졌는데도 대통령 후보까지 될수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씨가 대통령후보가 되자마자 YS를 찾아가 넙죽 절을 하면서 그가 준 시계까지 차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유권자들은 벌써 거기에서 ‘3김씨 식 타협의 냄새’를 맡아버린 것이다.
그뒤로 홍걸, 홍업씨등의 게이트가 정신없이 터졌고 DJ의 인사마저도 5년 임기가 끝나가도록 ‘순수한 개혁성’이라고는 조금도 느낄수 없는 방향으로 일관한데다가 노무현후보부터 당지도부가 총체적으로 나름대로의 계산 때문에 최소한의 ‘오월동주’도 힘들어보이는 적전분열 양상을 보이자 수도권 유권자들까지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간판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어쩔수없는 선택일 것이다.
정당의 존립기반은 정권 창출이지만 정권 창출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비전’이라는 매개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비전’이 없다. 국민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지못하는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지만 한나라당은 이회창이라는 리더가 있고 나머지 구성원들이 자기 당을 흠집내는 그런 콩가루 집안 같은 모습은 아니다. 단지 그 차이 뿐이다.
야합과 이합집산을 해서 정권을 창출할 수는 있다.그렇지만 유권자들은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아니 지금 한국의 대통령제는 5년 단임이기 때문에 권불 5년밖에 안된다.
YS가 3당합당으로 정권을 잡았다가 놓았고 DJ 역시 DJP라는 신조어를 만들면서 정권을 잡았지만 두 정권 모두 오직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서 ‘지조나 소신과는 무관한 정치 패거리들이 몰려있는 잡탕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그리고 지금 그 분들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차라리 ‘민주’를 외치며 선명야당을 내걸었을때의 모습이 훨씬 나았었다.
지금의 민주당도 차라리 야당을 할 각오를 하고 대통령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까지 저희 정치권이 너무 본분을 망각해왔습니다.우리 당은 앞으로 정치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사람끼리 모여 이렇게 21세기의 한국을 업그레이드 시킬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지켜보아 주십시오’ 한다면 그게 훨씬 나을 것이다.
김정빈<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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