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이라크로부터 침공을 당한 이란의 종교지도자이며 실권자인 호메이니는 TV에 등장해 국민들에게, 특히 소년들에게 자발적으로 전선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 대국민 성명이 있은 지 하루만에 수많은 소년들이 전쟁터에 나가겠다며 몰려들었다. 철모르는 소년들로 시끌벅적대던 골목들은 썰렁해졌다.
소년들은 이마에 빨간 테입을 붙이고 최전방으로 보내졌다. 이들의 임무는 대의명분을 위해 죽는 것이었다. 이슬람을 위한, 영생을 얻기 위한 순교가 그 명분이었다. 전선에서 싸우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뛰어드는 게 아니라 그저 죽으러 가는 것이다. 소년들은 지뢰밭에 투입됐다. 몸을 던져 지뢰를 터뜨리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정규군이 전진할 길을 터 주기 위함이었다. 수천 명의 소년이 지뢰밭에 투입됐다.
군 지휘관들은 국경선에 설치된 고압선으로 진로가 방해받자 소년들로 하여금 국경철책에 몸을 던지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년이 지뢰밭에서 사지가 찢겨, 고압선에서 감전돼 죽었다. 이들의 나이는 고작 12-13세였다. 호메이니는 이들에게 천국을 약속했다. 이 같은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소년병들이 목에 걸 ‘천국의 열쇠’를 하나씩 주었다. 무슬림의 눈과 귀에는 진짜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상식적인 시각으로 보면 혹세무민하는 ‘거짓 약속’이다.
이란을 ‘악의 축’에 포함시킨 부시 대통령이 이슬람의 깃발 아래 호메이니가 남발한 ‘거짓 약속’을 모를 리 없을 게다. 그러니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집권 후 여러 차례 실언으로 곤욕을 치른 부시가 또 한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주 백악관에서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기념사진 촬영 도중 이슬람을 ‘거짓 종교’(False Religion)로 칭한 것이다. 이슬람권이 발끈하자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을 왜곡하는 테러리스트를 지칭한 것”이라고 백악관측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부시의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시는 한 나라의 대통령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로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설령 사견임을 전제해도 이미 사견에 머물 수 없다. 게다가 대통령이 종교에 대해 단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슬람 신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듯한 발언은 백해무익하다.
이슬람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신자가 많은 종교다. 크리스천은 20억 명이고 무슬림은 13억 명이다. 지구인의 33%가 따르는 기독교에 이어, 이슬람은 22%가 신봉하는 ‘대종교’다. 미국 내 이슬람 신자는 2001년 현재 110만4,000명으로 기독교, 유태교 다음이다. 그리고 지난 10년 간 이슬람 신자는 109%가 증가해, 5% 증가를 보인 기독교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이슬람을 모독해서 득이 될 게 무엇인가.
부시는 대선 캠페인 내내 ‘동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했었다. 반대파를 너른 품으로 끌어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안에 인종, 종교, 문화 다원주의가 부드럽게 녹아들어 미국의 힘으로 확대 재생산되길 모두가 바라고 있다. 그런데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국민화합이 긴요하다고 역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분별 없는 ‘거짓 종교’ 발언 등으로 단합을 깨고 있다.
부시가 의도적으로 이슬람을 배척하려는 것은 아닐 게다. 부시는 중국 진시황처럼 진나라 역사책을 제외한 사서를 모두 불태우는 데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비교종교연구가 윌리엄 와트가 ‘Muslim-Christian Encounters: Perceptions and Perceptions’에서 지적했듯이 점령지의 종교와 문화 유산을 마구 짓밟은 칼리프 우마르의 배타성에 고개 끄덕일 부시가 아니다. 641년 북아프리카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지휘관이 유서 깊은 도서관 처리 문제로 서신을 보내오자 메디나 궁에 있던 우마르가 “책 내용이 코란의 가르침과 같으면 쓸모가 없으니 폐기하고, 코란에 저촉된다면 위험하니 없애라”고 명령한 것을 부시가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시의 ‘거짓 종교’ 발언은 그저 가십성으로 치부할 수 없다. 테러와의 전쟁, 중동분쟁, 이라크 공격설 등등 현안에는 항상 이슬람권과의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권력이 막강해도 경박한 지도력으로는 세계는 고사하고 한 사회도 제대로 이끌 수 없는 법이다. 부시는 도덕적 오만함을 버리고 좌우를 아우르는 ‘동정적 보수주의’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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