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경제 상황을 영화로 만든다면 ‘북경의 55일’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소비자들을 상징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불황을 상징하는 공격군을 맞아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예상 밖으로 잘 버텨주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버틸 수는 없다. 기업 투자를 상징하는 구원 군이 제 때에 도착할 것인가.
이런 영화는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이 보통이다. 포위된 성채는 거듭된 공격을 막아내지만 구원군은 아직도 오지 않는다. 지금 미 경제 상황도 그렇다. 인터넷 버블이 터졌는데도 소비자들은 지출을 계속하고 있다. 테러 공격이 자행되어도 돈을 쓰고 낮은 금리를 이용, 재융자 해 샤핑 몰에서 지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투자가 임박했다는 예상은 번번이 빗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빠른 시일 내 대대적 투자를 할 생각이 없다. 투자를 하려다가도 온갖 스캔들이 쏟아지고 주가가 연일 떨어지는 바람에 망설이고 있다.
구원군은 제 때 올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 제목은 ‘북경의 55일’이 아니라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가 될 수도 있다.
수개월 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이중불황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면 비웃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끈덕진 예외도 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모건 스탠리의 스티븐 로우치다. 이 칼럼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이중 불황은 상당히 일리 있는 얘기다. 그리고 지금 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2001년의 불황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를 잡기 위해 이자를 올리는 바람에 일어난 통상적 불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때는 다시 이자를 내려 주택 경기와 소비자 지출이 늘어나면 경기도 살아난다.
그러나 이번은 제2차 대전 이전식 이성을 잃은 낙관주의가 가져온 거품의 후유증이다. 이런 불황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기업 투자를 능가할 소비자 지출이 대폭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앨런 그린스팬은 나스닥 버블을 대체할 주택 버블을 만들어야 했다.
그의 최근 낙관적 발언으로 미뤄 보면 아직도 그것이 가능한 것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예견은 최근 들어 부정확해졌다. 그는 지나친 예산 흑자를 막기 위해 세금 감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최근 통계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표면상으로 보면 금년도 경제 성장률이 1/4분기 5%에서 2/4분기 1%로 내려간 것은 가슴 아프다. 그러나 그 밑으로 들어가 보면 실상은 더 나쁘다. 1/4분기에도 투자와 소비자 지출은 미미했다. 성장의 대부분은 기업들이 재고를 충당하기 위해 물건을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2/4분기 들어서는 실수요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향후 경기를 알려주는 풍향계인 샤핑몰 매출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나쁜 뉴스에도 불구하고 그린스팬을 비롯한 대부분 분석가들은 낙관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안심해도 좋은 것인가. 우선 경제 전망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낙관적 관측을 내놓으라는 강한 압력을 받고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비관론자인 로우치는 "내가 이중 불황을 점쳤다 그렇게 욕을 먹을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월가는 항상 파는 사람 편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 관리들 또한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적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감세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기 회복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린스팬은 주가 버블에 대한 자신의 책임 추궁을 면하기 위해 경기 회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희망적 관측은 젖혀놓고 낙관론의 근거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누가 더 지출을 늘린단 말인가. 지금 상황은 어떻게 경기가 다시 침체로 접어들지를 설명하기가 경기 회복이 가속화하리라는 것을 설명하기보다 훨씬 쉽다. 나도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에도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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