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이 끝난 시절, 필자 또래의 어린이들은 전쟁의 후유증인지, 밤에 작대기를 들고 이웃동네와 패싸움을 하기도 하고, 친구집에 모이면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주먹질 발길질, 누굴 때렸는지도 모른다. 킥킥거리다가 자신이 한대 얻어터져도 그 아픔 속에서 이상한 쾌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전쟁이 잦은 지역에서 용장이 나오는지는 몰라도 그때의 어린이들은 정신적으로도 허기지고 매말랐던 건 사실이다.
한번은 K집으로 놀러 갔는데 우리 또래의 K 사촌과 그 여동생이 다른 지방에서 다니러 왔었다. 같이 간 친구들과 불을 끄고 주먹질을 시작하려는데 여자처럼 예쁘게 생긴 K 사촌이 "전기 놀이하자"며 우리들 손을 잡았다. 빙 둘러 손을 잡고 누군가 잡은 손을 꾹꾹 누르면 다음 사람 손을 누르고 마지막 사람이 술래의 등을 두드리면 술래는 전기 시작 근원지를 찾아내면 되는 거였다.
그때 그의 여동생이 "오빠 나 두" 그러면서 우리들 사이에 끼어 들었는데 나의 손을 잡고 활짝 웃는 게 아닌가. 수없이 전기가 오는 것 같고 나중에는 손에 땀이 배었는데, 치고 받던 놀이 보다 맨숭한 전기 놀이가 더 기억나는 것은 이성의 손을 처음 잡은 그 황홀한 의식 때문인 듯 싶다. 이성이라는 그리움이 우리들의 삭막한 감성을 잠재웠는지 그 뒤론 험악한 놀이는 고만 둔 것 같다.
R 신부는 영성시집 머리말에 6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느 시인과의 이야기를 썼다. 그가 죽기 전 6개월 동안 신부님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매주 일요일 밤에 방문하여 한시간 동안 그의 손을 잡고 있다가 방을 빠져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R 신부가 8일간 어느 지방으로 피정 지도를 하고 2주만에 환자를 방문했을 때 "신부님 지난 일주일은 참 힘들었어요, 신부님이 아무 말씀 없이 그냥 손을 잡아주는 그 힘으로 일주일을 살았는데 지난주는 안 오셔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나 신부 자신도 일주일이 힘들었음을 느꼈는데 그때 그 이유를 깨닫는다. 그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 정작 힘을 받았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혼자 두 손을 합쳐 드리는 기도보다는 손에 손잡고 드리는 기도가 신의 의중으로 더 근접되는 게 아닐까.
세상사는 치열한 경쟁사이며 끝을 가늠 할 수 없는 욕심의 행렬이다. 이번 월드컵도 역전의 골을 넣치 못하고 16강에 실패했다면 아무리 점잖을 차리려 해도 필자의 입에서부터 좌절의 욕설이 쏟아져 나왔으리라. 누군가를 묵사발을 만들고 누군가가 피눈물을 흘려야 그 위에서 승리를 자축하게 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점수로 경쟁이 시작되고 누군가를 제끼고 나야 직장에 들어간다. 누군가를 물리쳐야 진급이 된다. 누구를 이김으로 그의 가정이 상류 사회로, 나른 나라를 부채국으로 몰아가야 자기들은 선진국가에 진입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쓰러져 가는 이들의 손을 잡고도 사랑과 행복을 느끼며 사는 이들도 있다. 전진상(全眞常) 복지관에서 회보가 왔다. 한국에 와서 다시 공부해 의사가 된 외국인을 포함하여 전문직 독신녀들이 30여년을 시흥의 달동네에서 가난한 이웃을 돕고 살면서 만들어 내는 소식지이다.
이번 회보에는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
"많이 사랑했죠. 내가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세상을 떠나면서 제일 미안한 사람은 저 사람이에요"
45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요셉씨가 부인에게 독백처럼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고백이다.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에서 조퇴한 아들이 아버지 손을 잡고 엄마와 함께 울고 있었다.
"진아 이제부터는 네가 가장이야. 엄마와 네 동생. 잘 돌봐주기 바란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눈물을 씻어 내리는 아들에게 "네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꼭 보고 싶었는데..." 하고 말을 흐린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대학교에 들어갈께요. 아버지"
후세를 믿는 그는 다음날 가족에 둘러 싸여 세상을 떠난다. 가족의 손을 잡고 다른 세계로 떠나는 모습은 평화였다.
그 가족보다 몇 배나 행복해야 할 세상의 많은 가족들이 그러하지 못함은 서로 손을 잡는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주 잡은 손은 평등을 의미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사람들은 보여 주었다. 빈부, 지역, 학벌의 차이를 뛰어 너머 손에 손을 잡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서로 서로 손을 잡는다는 것은 외로운 섬들이 다리를 놓는 거다. 섬들이 하나되어 화해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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