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반찬부는 ‘커뮤니티 키친’이다. 이 마켓 부엌에 의존하는 한인가정의 식탁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한 때 마켓 반찬은 ‘게으른 새댁’이나 사먹는 것이라는 눈총도 없지 않았으나, 생활은 갈수록 바쁘게 돌아가는 반면 마켓 밑반찬은 가지 수나 맛에서 월등하게 좋아지면서 반찬 코너는 이제 시간을 지혜롭게 쪼개 쓸 줄 아는‘현명한 주부’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다. 김수현 기자 가 한인타운‘플라자 마켓’반찬부에서 일하면서 체험한 비즈니스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마켓 반찬부의 하루는 콩나물 삶는 냄새로 시작한다. 9시에 출근해 콩나물과 시금치를 데쳐 내고, 달걀 삶고, 사태를 고는 등 준비작업을 마치면 10시부터 갖은 반찬들이 착착 완성품이 되어 나온다. 여느 직장인들 처럼 일과는 ‘나인 투 식스’. 하지만 종일 서서 만들고 또 만들어 내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그래서 때로 반찬 만드는 기계가 아닌가 하는 애환도 느껴진다고 하나 마켓 부엌은 중년 여인들의 생업 터전으로, 털털한 수다 공간으로, 축제 현장으로 시시각각 변하면서 매일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플라자마켓 반찬부에는 헬렌 이 반장을 포함, 9명이 일한다. 경력 18년인 이 반장이 간 맞추는 것부터 생산량, 순서까지 작업을 진두지휘한다. 앞치마와 모자는 필수 복장, 장갑도 끼지만 ‘손맛’의 신령함을 믿는 이씨는 몇 분 안가 장갑을 벗어버렸다.
9년차 방정자씨는 허리 복대를 차고 일한다. 종일 서서 일하려니 허리에 무리도 오겠다 싶지만 방씨는 "어디까지나 예방 차원"이라고 한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도 뜨거운 국물이 쏟아졌을 경우 데이지 않기 위해 신는 예방도구.
작업실 아줌마들의 호칭은 ‘언니’, ‘동생’.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동생들은 맏언니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언니’의 통솔력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초무침, 호박새우젓무침, 콩나물, 시금치, 장조림, 샐러드 등을 만드느라 정신 없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반장은 설거지 거리나 바닥에 놓인 그릇들을 빠짐없이 챙긴다.
"인스펙터가 제일 무서워. 깨끗하게 하는데도 그저 난리라니까. 새로 바뀐 그 동양애는 더해"
이 반장의 걸쭉한 입담에 수다가 우르르 터진다. 그러나 원래는 작업 중 잡담 금지. 기자가 자꾸 말을 시켜서 그렇지, 평소에는 안전과 효율성을 위해 ‘공적인 말 외에는 절대 삼가’라고 3년차 고삼봉씨는 말한다. 벽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일일 헬퍼’로 투입된 기자는 “나물을 (무치지 않고) 주무르고 있다”는 힐난을 받았다. 그러나 꽝꽝 언 해초는 너무 차갑고 볶은 버섯은 너무 뜨거워 손을 여러 번 뺄 수밖에 없었다. "헬퍼 생겨 좋다"던 방정자씨는 "(기자도 바쁠텐데) 얼른 하고 가야지"라며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완성품 반찬은 16온스, 24온스 등 적당한 크기의 용기에 담아 실을 붙인 뒤 냉장고에 진열되며 동이 난 순서대로 착착 다시 만들어 채워 진다.
반장의 순발력은 갈비가 동났을 때 발휘됐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애 목욕통 만한 스테인레스 그릇을 꺼내더니, ‘미리’라는 술과 달인 간장, 설탕 등을 침착하게 부어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반찬부는 갈비와 불고기를 내가 직접 달여온 간장에 잰다"는 자랑을 덧붙이면서.
헬렌 이씨는 "옛 어른들은 조미료를 귀후비개 만큼만 넣으라고 했는데, 요즘은 식당이고 가정이고 너무 많이들 쓴다"며 "조미료는 최대한 적게 써야 손님들이 믿어준다"고도 했다.
갈비는 오이지무침, 장조림, 무짠지, 마늘쫑 등과 함께 최고 인기 품목. 하루 200파운드씩은 거뜬히 나가고, 주말에는 더 팔린다. 오이지무침도 하루 50파운드는 가볍게 나간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한꺼번에 많이 만들지 않고 조금씩 자주 만든다. 가장 바쁜 금, 토, 일요일에는 일손이 달릴 정도.
반찬부 고객은 남녀노소 구별이 없지만 아무래도 젊은 부부나 유학생 등이 더 많이 이용한다. 일본인, 중국인 등도 꽤 된다. 기자가 일하고 있는 동안에도 한 외국인이 불고깃감을 샀는데 요리할 줄 모른다며 웃돈을 얹고 양념장을 부탁해왔다.
시간은 빨리도 흘러 얼추 정오가 됐다. 점심시간은 30분, 휴식은 오전 오후로 10분씩 2번이다. 점심은 직접 만든 밥과 반찬으로 마켓 직원들과 같이 먹고, 일할 때 못한 수다는 휴식시간에 다 털어 낸다. ‘체험 취재’의 현장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의 공통된 화두는 2가지. "믿고 먹어주는 LA한인들이 참 고맙다"는 것과, "반찬 만드는 건 여느 마켓과 같겠지만 사람 대우를 해 주는 곳이어서 이곳을 떠나기 싫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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