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진출은 좌절됐어도 우리 모두가 이긴 경기였다. 선수들은 마지막 종료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고, 국내외 5,500만 한인들은 뜨거운 마음으로 그들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에 감사와 격려를 보냈다. 비록 히딩크 호는 독일과의 4강 전을 끝으로 세계 축구사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황홀한 대장정을 일단락 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48년만의 월드컵 첫 승, 16강 처녀진출에 이어 8강, 4강에 이르는 기적의 행진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 한인들의 가슴속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안겨줬다. 한민족을 ‘붉은 물결’ 속에 하나로 뭉치게 한 태극 전사들의 꿈의 여정을 되돌아본다.
48년만의 첫 승 감격
4일 열린 폴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는 ‘48년만의 월드컵 첫 승’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남긴 일대 쾌거였다. 전반 26분 황선홍의 절묘한 논스톱 왼발 슛에 이어 후반 9분 유상철이 승리에 쐐기를 박는 추가 골을 터뜨리자 온 국민은 16강 진출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완벽한 공수조화 속에 이뤄진 한국의 승리는 경기가 열렸던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은 물론 전국을 온통 붉은 색 함성으로 뒤덮었다. 그러나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의 첫 승리가 4강 신화의 전주곡이 될 줄은 아무도 예감하지 못했다.
16강이 보인다
9일 미국과의 예선 2차전은 16강 진출의 최대 고비였다. 전반 24분께 클린트 매티스에게 기습 선제 골을 내준 뒤 이을용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패색이 짙던 한국은 후반에 교체 멤버로 들어간 ‘테리우스’ 안정환이 경기종료 12분을 남기고 극적인 동점 헤딩슛을 성공시키면서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한국은 여러 차례의 역전찬스를 잡았으나 골로 연결시키지 못해 결국 무승부로 만족해야 했지만 16강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 꿈의 여정에 시동을 걸었다. ‘오노 파문’을 빗댄 안정환의 골 세레머니는 그의 골만큼이나 국제적인 화제를 모았다.
16강 꿈을 이루다
세계 랭킹 5위 포르투갈,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벽을 넘었다.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경기였지만 태극전사들은 철저한 킬러 근성을 발휘했다. 미국이 폴란드에게 2대3으로 무릎을 꿇어 포르투갈 역시 비기기만 해도 16강 티켓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박지성은 후반 25분 신기의 기술을 뽐내며 ‘조 1위 16강 진출’의 축포를 터뜨렸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포르투갈에게 치욕과 통한의 패배를 안겨준 이 경기는 만년 세계축구의 변방에만 머물렀던 한국이 지구촌의 중심에 우뚝 섰음을 만방에 과시하고 4강 신화의 서막을 알리는 일대 쾌거였다.
기적의 골든 골
18일 한국팀이 또다시 넘지 못할 벽을 넘었다. 연장 후반 12분 안정환의 역전 골든 골로 세계랭킹 6위인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를 무너뜨리고 8강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한국은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혼의 축구를 선보이며 오만한 이탈리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0대1로 뒤지던 후반 42분 설기현이 왼발 터닝슛으로 빗장수비를 무너뜨리는 순간 온 세상을 붉은 색 물결로 출렁이게 했던 우리 국민들은 이미 또 다른 기적의 드라마를 예견하고 있었다. 월드컵 최대의 역전 드라마를 목격한 붉은 악마들은 외쳤다. ‘내친 김에 4강까지 가자!’
피 말린 승부차기
입술이 타들어 가고 심장의 박동이 멎는 듯 했다. 하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 달라고. ‘폭주 기관차’ 히딩크호는 스페인을 맞아서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몸놀림은 무거웠지만 선수들의 투혼은 잠들지 않았다. 120분간의 혈전이 끝난 뒤 피를 말리는 승부차기에서 이운재는 수호신이었다. 스페인의 네번째 키커 호아킨의 오른발 슛을 기적처럼 막아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키커 홍명보가 오른쪽 골네트를 뒤흔드는 순간 붉은 색 함성으로 천지가 진동했다. ‘아시아의 자랑’이 4강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우승의 문턱까지
아쉽지만 후회 없는 한판이었다. 두 차례의 연장전을 거쳐 4강에 오른 한국전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전차군단’ 독일을 맞아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비록 0대1로 승부에서는 졌지만 한국축구의 4강 신화가 결코 허상이 아니었음을 세계 앞에 분명히 했다. 종료휘슬이 울리는 순간 우리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았지만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던 우리 국민들은 태극전사들의 ‘아름다운 패배’에 아낌없는 찬사와 경의의 박수를 보냈다. 세계 정상을 향한 붉은 열망이 살아있는 한 태극전사들의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이젠 2006년을 향해 뛰자. <사회부·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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