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가장 값진 상은 우등상이 아니라 6년 개근상이라고 한다. 수백명 졸업생 가운데 6년 개근상을 받는 학생은 고작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6년 개근도 힘들다는데 지난 주말 동부한국학교 종업식에서는 10년 개근상을 받은 학생이 2명이 나와 화제다. 비록 토요일에만 수업이 있는 학교지만 1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개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 학생을 소개한다.
문지연양
하시엔다하이츠의 시더레인 미들스쿨 7학년 문지연양(13), 의류도매업에 종사하는 문택진(44)·정애(43)씨 부부의 1남1녀중 맏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2세 때 미국에 와 3세 때 동부한국학교 유치반에 입학해 올해까지 10년 동안 다녔다. 어머니 문정애씨는 처음 이민와 하시엔다하이츠에 자리 잡았는데 한국처럼 나들이할 곳도 없이 외롭게 지내던 차에 동부한국학교 학생모집 전단을 보고 한글학교에 보내게 됐다고 밝혔다.
어머니 문씨는 "물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주면 좋지만 공부란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정신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었고 그래서 ‘한국학교에 왜 다녀야 하는가’를 묻는 아이들을 독려해 학교에 보냈다는 것이다.
때로 놀러가고 싶을 적도 있고 토요일마다 열리는 스포츠 경기도 참가하고 싶어했던 적도 있다. 토요일 아침 늦잠도 자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버거킹 크로상 샌드위치로 유혹해 학교에 보내기도 했다.
어머니 문씨는 지연양이 4세 때 함께 손 붙잡고 한국에 계신 할머니에게 한글로 썼던 편지를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누렇게 바랜 그 편지가 엄마에게는 소중한 보물이었던 셈이다. 10년 개근상을 받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겨울방학 기간 놀러온 한국의 사촌들이 여행을 떠날 때. 함께 가고 싶어하는 지연양을 막무가내 고집으로 뜯어 말렸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지연양의 아버지 택진씨 어머니 정애씨 그리고 할머니까지 초등학교 졸업 때 6년 개근상을 받았다고 한다. 웨지워스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동생 동균(10)군도 6년 개근을 했다. 발톱수술을 3차례나 받으면서도 학교에 빠진 적이 없다.
지연양의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선생님. 부모님은 하필이면 그 힘든 교사직일까 생각해 ‘크면서 바뀔 것’을 기대하지만 정작 본인은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희망에 변함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연양은 현재 학교에서도 랭기지 아트 클래스 조교 노릇을 하고 있고 월, 수, 금요일에는 모교이자 동생 동균군이 다니고 있는 웨지워스 초등학교에서 성적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개인지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임준형군
웨스트코비나의 사립학교 사우스힐스 아카데미 7학년에 재학중인 임준형(13)군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어쩌다 한인 할머니나 할아버지들로부터 "미국에 언제 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한국말을 잘하니까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인줄 모르고 최근에 이민 온 아이로 착각한 것이다.
세살 반 때부터 만 10년을 동부한국학교에 다닌 준형군에게 한국어 공부를 하는데 대한 회의는 5학년 때 한차례 있었다. 남들은 다 쉬는 토요일까지 일찍 일어나서 한국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 싫어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학교에 가느냐 마느냐하는 문제로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던 차에 학교에서 수업도중 미국인 선생님이 "준형이는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서 한국학교에 그만 다닌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영어 연수 온 한국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6명을 집에서 민박을 시키면서 영어지도까지 해줬는데 준형군이 한국말을 잘하다보니 대화가 주로 한국말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아이들 영어 연수에 별 도움은 못됐다고 한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임춘성(46), 봉애(46) 부부의 외아들인 준형군은 태권도와 피아노를 좋아하고 GPA는 4.0이다. 5년째 접어든 태권도 실력은 이달 말 2단 승단을 앞두고 있고 피아노 역시 8년 넘게 쳐온 만큼 수준급이다.
준형군의 장래희망은 과학자다. 재작년에 친한 친구가 아버지를 암으로 잃는 것을 보고 이담에 커서 과학자가 돼 암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어머니 임봉애씨는 "과거 프랑스 유학시절 프랑스인들 집에 초청을 받아 놀러가도 언어가 안 통해 재미가 없었던 기억을 살려 외아들인 준형이에게 어려서부터 한글을 가르치자고 결심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살 때부터 집에서 한글 교재를 앞에 놓고 가르쳤는데 그렇게 어렵더라는 것이다. 결국 동부한국학교에 보냈는데 "헌신적인 선생님들 덕분에 준형이가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게 됐다"고 고마워 하고 있다.
준형군은 토, 일요일 2시간씩만 컴퓨터 게임을 한다. 평일에는 숙제가 많기 때문에 허락을 해준다고 해도 컴퓨터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 음식은 게장과 냉면을 좋아한다. 이북이 고향인 집안내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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