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리가 분리되면 LA와 밸리 모두 싫든 좋든 ‘밟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새로 탄생할 밸 리가 탄탄대로를 달릴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일로 뒤뚱거리며 ‘LA우산’ 속 시절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밸리 없는 LA는 우려대로 사양길에 접어들 수도 있고 의외로 심기일전해 재도약을 이뤄낼 수도 있다. ‘밸리 분리’의 득과 실은 그래서 점치기 어렵다. 당장 눈에 보이는 손익계산서와 실제 대차대조표의 내용이 판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분리의 파장이 클 것임은 분명하다.
우선 두 도시는 정치적 위상의 등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밸리가 독립하면 자체 시장과 시의원을 뽑고 나름대로 시정을 펴면서 로컬 수준에서는 대표성의 확립을 만끽할 것이다. 노스리지, 그라나다힐스 등 한인 밀집지에서는 한인 시의원 배출도 추진해 볼만하다. 지역내 정치적 역동성은 가시화될 것이다.
하지만 보다 높은 차원의 정치력에서는 또 다른 얘기다. 그동안 LA시장은 주지사선거에 도전할만한 자리로 여겨져 왔다. 리처드 리오단 전 LA시장이 공화당예선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한 때는 주지사 당선이 유력시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밸리가 떨어져 나가면 위상 하락으로 LA시장이 주지사에 나가는 것이 한층 어려워 질 것이다. LA는 밸리 분리로 ‘정치적 수족’을 잃게 되는 셈이다. 밸리 시장의 주지사 도전도 마찬가지일 게다. 정치적으로 밸리는 ‘작은 것’을 얻겠지만 밸리, LA 모두 ‘큰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경제 판도도 달라질 것이다. LA의 세수의 30%를 맡아 온 밸리가 딴 살림을 차리면 LA 재정은 곳곳에 구멍이 생길 게 뻔하다. ‘이혼 위자료’로 첫해 1억2,800만달러, 그리고 매년 5%씩 줄여 향후 20년간 밸리로부터 받아내도록 돼 있지만,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LA를 꾸려가기에는 턱없는 액수다. LA의 공공 서비스의 질적 저하는 불문가지다. 하지만 LA는 LA공항, 항만 등 큰 덩치를 갖게 돼 잘만 운영하면 짭짤한 재미를 볼 수 있다. 세수가 줄어든 만큼 정신을 차리고 허리띠를 졸라맨 뒤 더욱 열심히 뛰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밸리는 LA에 내던 세금으로 충분히 여유 있는 시정을 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LA에 세금 낸 만큼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게 밸리 주민들의 불만이었던 게 사실이다. "더 이상 우리 돈으로 남 좋은 일 시킬 수 없다"는 의식이 밸리에 좍 퍼져있는 것이다. LA시의 주머니는 얇아지겠지만 밸리는 ‘좋은 동네 만들기’에 흥이 날 것이다. 그러나 그럴듯한 산업기지가 없는 밸리는 기업유치 캠페인을 벌여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사회상도 달라지게 돼 있다. 밸리 독립은 LA 중산층의 ‘탈 LA’를 부추길 것이다. 교육과 범죄, 경제적 이유로 주민들의 엑소더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거비 등을 감안할 때 저소득층은 LA를 떠나려 해도 쉽지 않으니 어느 정도 재정능력을 갖춘 중산층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밸리가 ‘부익부’를 즐길지 모르겠지만 LA는 ‘빈익빈’을 감내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 게다가 밸리 분리를 기화로 롱비치와 할리웃 등도 ‘마이 웨이’를 외칠지 모른다.
이런 저런 일이 겹치다 보면 두 도시의 주민들간 갈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LA주민들은 "밸리 독립 때문에 LA 사정이 나빠졌다"고 할 것이고 밸리 주민들은 "그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받아칠 것이다. 지역주의가 발을 들여놓을 것이고 앙금은 쌓여갈 것이다.
교육은 현재의 틀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LA에서 오는 버싱 학생들이 학교의 물을 흐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밸리 주민들이 모종의 조치를 강구하려 할 것이고 이를 둘러싼 마찰음이 날카로울 수 있다. 또 밸리 분리 후에도 전기와 물 공급을 LA가 담당한다고 하지만 언제 자유시장원리를 들먹여 값을 올림으로써 두 지역의 싸움거리가 될지 예단할 수 없다.
몸집이 비대하면 음식 소비량이 많지만 생산성이 반드시 이에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덩치가 커지면 효율성 문제가 대두된다. 그렇더라도 무리해서 몸을 줄이려다간 부작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밸리 분리는 장단점을 고루 안고 있다. 결정은 어차피 유권자들의 몫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표결 결과를 모두에게 유익한 쪽으로 선용하는 지혜다. 가장 경계할 것은 아전인수식 정쟁과 위험한 집단이기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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