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 중 하나가 돈과 관련된 것이다. 성경연구가에 따르면 믿음에 관한 구절은 215개, 또 구원에 관한 구절은 218개인데 비해 돈과 부(富), 부자 등과 관련된 구절은 2,8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돈은 그만큼 일상생활과 밀접하고 또 근본적으로 종교와도 관계가 있다는 의미다. 사실 돈이라는 영어단어 Money도 종교적인 데에 그 기원이 있다. 로마의 여신 ‘주노 모네타’(Juno Moneta)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신(神)만이 ‘신용의 가치’를 제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과 함께 기원전 269년 로마인들은 그녀의 사원에 최초의 주화제조 공장을 차렸다. 이에 따라 모든 주전소를 ‘모네타’ 또는 영어의 ‘민트’(Mint)라고 했고 그 후 이에 해당하는 프랑스 말인 ‘Monnaie’의 영향으로 거기서 만들어진 것을 통틀어 ‘Money’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돈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0세기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차차 금속이 돈을 대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돈은 인간의 사고(思考)방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추상적 사고의 기원은 돈, 곧 화폐의 기원과 일치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알려진 이야기다.
돈은 역사적 현실 전체의 거울로도 불린다. 한 시대의 사고방식, 사회적 질서 모두가 화폐에 반영돼 돈이 바뀌면 시대가, 시대가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어휘는 오늘날 단순히 가치 교환수단으로서 화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돈은 다양한 어휘들과 함께 광범위한 ‘의미의 장(場)’을 구성한다. 돈은 ‘재물’ ‘물질’ ‘소유’ 등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확장된 의미로는 ‘풍요’ ‘번성’ ‘행복’ ‘힘’ ‘세력’ 등을 가리킨다. 또 ‘욕심’ ‘불의’ ‘파멸’과 같은 어휘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돈은 단순히 중립적 존재가 아니다. 돈은 세력(power)이다. 그래서 한 신학자는 이렇게 갈파한다. "돈은 적어도 인류타락 이후 세대 안에서 영적 파워를 지닌 무서운 실체다. 오죽하면 예수님조차 ‘하나님과 매몬(Mammon·돈, 혹은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했을까. 인류타락 이후에 하나님을 가장 닮은 피조물이 있다면 그것은 ‘돈’일 것이다."
돈은 인간에게 윤리적 차원을 넘어 종교적 차원을 열어준다는 의미다. 돈에 대한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 결정이 난다는 이야기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일천 번제(燔祭)를 드렸다. 천번의 번제를 드리면서 그는 무엇을 묵상했을까. 왕국을 통치하는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왕국을 다스리는 능력은 돈도, 공권력도 아닌,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에서 온다는 사실을 솔로몬은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 한 설교자의 말이다.
"권력의 원천은 폭력과 부와 지식으로 나눌 수 있다." 앨빈 토플러의 말이다.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가장 이상적이고 민주적인 권력의 원천은 지식, 솔로몬의 말을 빌리면 지혜에 있다는 것이다. 폭력(공권력)과 돈의 힘에만 의지하는 권력은 반드시 한계상황에 부딪힌다는 이야기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비리의 주범으로 몰려 구속됐다. 5년전 사태가 재현된 것이다. 사태는 더 악화 될 수도 있다. 대통령 아들의 구속이 한 명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대통령의 아들들을 타락의 나락에 빠지게 하는가. 왜 ‘현철비리의 척결’을 촉구한 DJ의 말은 5년이 지나 일종의 ‘자기 성취적 예언’처럼 부메랑 효과를 일으키고 있을까.
"부패성은 개인과 집단의 부패성으로 나눌 수 있다. 개인적 행태의 부패성은 시기, 질투, 명예욕, 당파성, 탐욕 등으로 나타난다. 집단적 행태의 부패성으로는 집단 이기주의, 혈연주의, 권력형 독재주의, 사회적 부정부패, 사회적 폭력조직 등을 들 수 있다." 한 신학자의 지적이다.
이 부패의 배후에 존재하고 있는 파워가 바로 ‘매몬’이다. 그리고 물신숭배는 결국 저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3홍(弘)사태’니 ‘왕자의 난’이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돈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이제 와서 보면 DJ는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실패한, 아니 실패할 수밖에 수 없는 대통령’이었는지도 모른다. 외양은 ‘민주화’ ‘개혁’ ‘햇볕’ 등으로 포장됐지만 그 내면은 자만과 오직 돈만을 추구하는 물신숭배로 가득 찬 권력이었다는 게 결국은 드러나서 하는 말이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무엇일까. 깊은 성찰 끝에 권력이 저지를 수 있는 죄에 민감히 반응하면서 오만과 부패의 유혹이 항상 눈앞에 있음을 깨닫고 겸허하게 엎드리는 대통령이 아닐까. 마치 솔로몬이 일천번 번제를 드린 것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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