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은 워싱턴을 외경의 염으로 바라본다. 정치권의 파워 때문이다." 클린턴이 백악관 주인공이 된 후 할리웃이 워싱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파워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인턴과의 정사 장소로 사용하다’-. 온갖 상상력으로 먹고사는 할리웃조차 감히 생각하지 못한 일을 클린턴이 해냈기 때문이다. 스캔들로 시작해 스캔들로 끝난 클린턴 백악관을 읽어 내는 키워드는 ‘섹스’다. 사상 최장 호경기의 업적도 물거품이다. 클린턴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결국 섹스 스캔들이고, 탄핵이다.
’근대화’ ‘새마을’-. 박정희가 떠오른다. ‘카키색의 권위’가 연상된다. 유신이란 무엇이냐. 군사독재의 결정판에 다름 아니다. 박정희 시대의 키워드는 ‘군사문화’다.
DJ시대 유행어는 ‘IMF’로 시작돼 ‘햇볕’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검정색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검은 선글라스에 검정색 ‘마이’차림의 조폭(組暴). 그 조폭 열풍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서다. DJ시대의 키워드는 그러므로 ‘조폭문화’다.
왜 ‘조폭 신드롬’일까. 조폭의 특징을 먼저 알아야 얘기가 풀릴 것 같다.
조폭의 특징은 불법 활동을 통해 이득을 추구하고, 위협이나 폭력을 사용하며, 면책을 위해 뇌물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이런 조폭이 발생하는 원인을 사회학자들은 ‘다중한계인구’(Multiple Marginal Population)라는 복잡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편견과 차별을 받게되면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부터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이런 다중한계인구 중 신체적으로 일할 능력이 있는 데도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결국은 폭력집단화 한다는 견해다.
이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개념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중심개념은 사회를 구성하는 중심세력과 가치관이다. 이 틀에 대한 개혁 요구가 주변개념이다. 조폭은 주변부에서 하부구조를 이루는 집단이다.
중심이 부패하면 주변이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 사회적 대변동 시기에는 폭력이 끼여들 틈새가 많아진다. 그러므로 문제는 주변이 제대로 제자리를 찾는가에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오히려 역사의 퇴영(退 )만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심부는 과거 카키색으로 덧입혀져 있었다. 그 중심부가 부패하자 주변부의 중심이동이 이루어졌다. DJ로 상징되는 세력이다. 이 점에서 박정희의 군사문화와 DJ의 조폭문화는 한 시대의 산물이고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무슨 근거로 그러면 DJ시대의 특징을 조폭문화로 규정하는가. 주변부가 중심으로 이동한 시기가 DJ시대다. 거기다가 정치가 너무나 조폭의 행태를 닮아서다.
폭력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힘이다. 정치라는 게 오직 권력싸움, 즉 힘의 논리에만 매달려 있다. 끼리끼리주의에 근거한 정치구조 역시 조폭과 닮았다. 권력이 계보니, 파벌이니 나뉘어질 때 양산되는 건 권력형 부정부패 뿐이다. 정치권의 싸움은 조폭의 싸움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보스에 대한 맹목적 순종 하에 죽기 아니면 살기식 싸움이다. 바로 조폭식이다.
왜 ‘조폭 신드롬’인가. 본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윤곽이 드러난 것 같다. 대중은 시대정신(?)에 민감하다. 정치현실과 똑 닮은 조폭, 그 조폭이 영화라는 비현실에서는 현실과 달리 ‘의리의 사나이’로 그려지고 정의(?)를 위해 통쾌하게 폭력을 휘두른다. 대중은 환호하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최규선씨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DJ정권의 비리가 한꺼번에 튀어나온 것이다. 재벌 빅딜 등 주요 정책결정이 비선(秘線) 조직에 의해 이뤄진다. 남북관계 개선도 애당초 노벨상을 타겠다는 야무진 목적과 맞물려 있다.
권력내부의 암투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끼리끼리 봐주기의 행태가 곳곳서 발견된다. 권력 핵심부에서 오고 간 말은 아예 수준 이하다. 정치권력의 품격이 말이 아니다. 한마디로 조폭수준이라고 할까. 아니, 제 아무리 조폭문화에 밝은 ‘충무로 영화가’도 상상도 못할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게 ‘최규선 녹취록’이다. 그러니 ‘조폭문화의 결정판’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정치의 조폭화. 그 다음에 오는 건 그러면 무엇일까. 근엄한 정치학자들은 이렇게 경고한다. "권력자들이 국가권력을 사물화(私物化)할 때 국가경제는 빈 껍데기만 남는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법과 질서의 원칙이 허물어진다."
그건 그렇고 녹취록 속편이 몹시 기다려진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DJ정권이 빚어낸 정치 논픽션이 ‘갓 파더’ 뺨치게 드라마틱해서다. ‘조폭공화국 만세’라도 불러야 할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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