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분야 개척하는 진취적 기상 요망
주류 언론 진출로 발언권 얻어내야
미국에서 언론은 입법 행정 사법에 이어 ‘제4부’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4·29 폭동 때도 한인들은 주류 언론에 대변자를 갖지 못해 폭동의 최대 피해자이면서 원인 제공자로 오도되는 억울함을 당해야 했다. 발행부수 350만을 자랑하는 대표적 주간지 피플(People) 편집장이 된 박진이(Jeannie Park, 40)씨와 소수계 언론인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하버드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84년 대선 때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진영에서 일하기도 한 박씨는 타임지 기자로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먼저 한인으로 주요 언론 고위직에 오른 것을 축하드립니다. 어떻게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는지 먼저 말씀해 주시죠.
▲어려서부터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글 써서 먹고사는 일이 가능할까 걱정돼 언론계 진출을 망서렸지만 졸업 후 성공한 언론인들을 만나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고 매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언론은 아직도 소수계 진출이 미미한 분야의 하나입니다. 소수계 여성으로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한인이라고 특별히 차별을 받거나 어려운 경험을 한 적은 없습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저를 한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한인들이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히스패닉과 멕시코에서 온 히스패닉이냐를 따지지 않듯 미국인들은 저를 아시안으로만 볼뿐입니다. 전화로만 통화한 사람 중에는 나중에 내가 아시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미 언론사에서 아시안이란 이유로 인종 분규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는 것은 들었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여러 미국 잡지사에서 근무했지만 아시안이라고는 저 혼자일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아시안 아메리컨 언론인 협회 발족에 적극 참여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시안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시안끼리의 네트웍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시안 아메리컨 언론인 협회란 어떤 단체인지 설명해 주시죠.
▲아시안 아메리컨 언론인 협회는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모든 언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아시안들로 조직된 전국 기구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가 있으나 전국에 지부를 두고 있습니다. 1985년 뉴욕 지부가 결성됐을 때 창립 멤버로 초대 지부장을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 안됐지만 이제는 뉴욕 지부만 300명이 넘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전국 조직의 사무국장 직을 맡고 있으며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아시안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 주목적이며 그 수단으로 아시안의 언론 진출 확대와 아시안 관련 뉴스의 공정 보도 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인 여성으로 언론계 최 고위직에 오르게 된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하려면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필수 조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의외로 드뭅니다.
-주류 사회에서 활동하는 한인 가운데는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인사회와는 어느 정도로 친숙합니까.
▲저는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 동네에 한인이라고는 단 한 집밖에 없었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한인들이 많아져 교회도 생기고 활동도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700명의 졸업생 중 한인은 저 하나였지만 소외감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학교 생활을 통해 백인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이 돼 있었고 집에 돌아오면 한인과 한국 문화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세계를 모두 경험하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인사회나 동료 한인 언론인과 매우 가깝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인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고 한국말도 유창하게 구사해 한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려면 아시안끼리 연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언론계에서 한인만이 아니라 모든 아시안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힘써왔습니다.
-최종 뉴스 판단을 해야 하는 편집장은 언론에서 가장 중요한 포스트의 하나입니다. 편집장으로서 어떤 점을 강조할 계획입니까.
▲편집장이라고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뛰어난 인재를 모으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우수한 잡지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미국의 장점과 문제점,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신의 힘으로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 등 많은 기본적 미국 가치들을 믿고 찬미합니다. 미국에서 언론은 여론을 조성하고 행동까지 바꾸는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한인들의 미디어 진출이 더 필요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언론계에 한인들이 없어 가지고는 결코 우리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없습니다.
-젊은 한인들과 한인 사회에 들려줄 말이 있다면.
▲한인들은 소수계로서 아이덴티티와 문화, 전통 등 숱한 난관과 싸워가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강해질 수는 있지만 그러다 자칫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가 뭔지 찾는 일에 소홀할 수도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남이 하지 않았던 분야도 도전하는 개척 정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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