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갖고도 안되는 일이 있다. 애들 좋은 대학 보내는 것과 야구에서 좋은 성적 내는 것이 그런 일이다. 박찬호가 옮겨가는 인연으로 우리에게도 한결 가까이 다가선 텍사스 레인저스. 2억5,200만달러의 사나이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비롯, 후안 곤잘레스등 어마어마한 고액연봉자들로 짜여진 초호화 군단이다. 올해 팀 연봉이 1억300만달러로 메이저리그내 3번째다. 그러나 성적은 대단히 실망스럽게도 아메리칸리그 서부조 꼴찌. 붙었다하면 진다.
걱정했던 선발(박찬호는 개막 테이프 끊자마자 부상병동으로 내려갔으니 이 부류에서도 제외)이 좀 하는가 싶으면 불펜이 죽을 쑤고, 불펜 탓이라며 삿대질을 해대면 믿었던 방망이가 잠을 잔다. 메이저리그내 특급 방망이를 다 모아놓았다는 레인저스는 요즘 ‘방망이가 안 터져서 진다’.
조직차원의 삐걱대는 파열음은 더 심각한 것 같다. 형편없는 불펜 투구에 화가 난 감독이 경고차원에서 잔 락커를 마이너로 강등시키는 조치를 취해도 선수는 마이너팀에 출근도 안했고, 좌천됐다고 출근부에 도장도 찍지 않고 생떼를 피우는 선수를 뭐가 급한지 몇일 지나지도 않아 다시 메이저로 끌어올려다 기용하는 팀이 요즘의 레인저스다.
25일 현재 6승14패(이하 오후2시41분 현재), 승률 0.300. 메이저리그 전체 팀중 끝에서 두 번째. 투입 대비 산출이 엉망이다. 이럴때 당연히 구조조정이 이슈로 제기되고 팀 분위기는 스산해진다.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 제리 내런의 인책설이 벌써 나돌고 있고, 조각 총책인 잔 하트 단장 역시 좌불안석. 선수들은 팔짱만 끼고 서로를 노려본다. 스타 플레이어는 많으나 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세 구단 몬트리얼 엑스포스와 미네소타 트윈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질주는 눈부시다. 몬트리얼(13승8패 승률0.619)과 피츠버그(13승7패 승률 0.650)는 NL동부 및 센트럴 지구 선두, 미네소타(14승8패 승률0.636)는 AL센트럴 2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몬트리얼과 피츠버그는 꼴찌였다.
선수 총연봉이 명문 양키스나 호화군단 레인저스의 3분의 1선에 불과한 3,800내지 4,200만 달러. 얼마나 초라해 보였던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버드 셀리그는 작년 말께 "부자 팀과 가난한 팀의 차이가 메이저리그 야구경기 수준에 불균형을 가져온다"며 몬트리얼과 미네소타의 공중분해를 속으로 점찍고 구조조정을 세차게 몰아쳐 갔었다. 이런 한심했던 팀들이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나 볼 수 있는 입이 딱 벌어지게 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트윈스감독 란 가든하이어가 말하는 상승세의 비밀은 두가지. "메이저리그가 우리 팀을 와해시켜버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을 말자. 대신 좀 더 집중해서 플레이를 잘 하자.", " 우리는 ‘팀이 하는 경기(Team Ball)’를 한다."
팀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기 자체보다 위기를 일체감으로 승화시켜 내는 팀 구성원들의 태도에 성공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위기는 대개 일체감보다 분열로의 통로를 더 크게 열어 놓는다. 흔히 말하는 야구의 3요소 선발-불펜-타격에서 다른 팀에 비해 절대 불리하나 ‘팀’이 살아있기에 기적을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팀에는 투입과 산출이 함수관계를 갖는 기계적 산술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그 무엇이 반드시 있다.
박찬호가 떠난 다저스. 요즘 잘 나간다. 13승9패로 샌프란시스코 및 아리조나와 함께 NL서부조 선두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잘 나가서 그런지 선수들이 기분 좋아 보이고 서로간에 화기가 애애하다.
상황이 나빠지면 (공교롭게도) 몸이 아파 물러서거나, 누구의 탓으로 보기가 애매할 때 옆사람 탓으로 밀쳐내거나 동료의 작은 실수에 덕아웃으로 들어오며 불같이 화를 내며 글러브를 집어던지는 선수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작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새로들어온 오달리스 페레스는 점잖은 이시이의 뒤통수를 연신 만져가며 농을 걸고 있고, 이시이는 영어를 알아듣는지 마는지 그냥 실실 웃는다. 선수들이 잘 나가서 기분이 좋기보다 서로간에 기분이 좋아서 잘 나가는 것 같다.
잘되는 회사와 안되는 회사는 직원들 얼굴보면 알고, 잘되는 팀과 안되는 팀은 덕아웃 보면 안다. 살얼음같은 경쟁관계임은 분명하지만 혼자만을 생각하지 않고 서로 화기애애하고 실실 장난도 나오는 덕아웃. 그런 덕아웃을 가진 팀은 되는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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